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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가습기살균제 ‘면죄부’ 판정 때 주심 상임위원이 ‘윗선 외압’에 결론 바꾸기 주도

입력 2017-10-18 18:35:01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가습기 살균제 면죄부 판정’에는 신고 접수부터 조사, 심의까지 공정위의 적폐관행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최종 심의에서 절차적 위법까지 저지르며 기업에 면죄부를 준 공정위는 여전히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애경과 SK케미칼이 제조·판매한 ‘가습기 메이트’ 피해자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두 업체의 광고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며 지난해 3월 공정위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이미 2012년 두 업체의 동일한 광고 행위에 ‘무혐의 판정’을 내렸었다. 같은 불공정행위에 대한 재신고 사건은 공정위 본부에서 재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 사건을 서울사무소에 배당했다. 재조사 결정을 내리면 자신들의 2012년 무혐의 판정에 하자가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사무소의 조사는 부실했다. 환경부는 이미 2015년 가습기 메이트에 원료로 쓰인 독성물질 메틸클로로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의 인체 위해성을 인정했다. 그런데도 서울사무소는 이런 환경부 의견을 심사보고서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공정위는 2012년 조사 때 가습기 메이트의 라벨에 있는 광고문구만 조사했고 신문·잡지광고를 뺐다. 지난해 조사도 마찬가지였다. 송기호 변호사는 18일 “조사 범위를 확대하면 자신들의 과거 무혐의가 잘못됐음이 드러날까 우려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이 사건의 1심 재판 격인 심의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드러났다. 지난해 8월 12일 소위원회를 연 뒤 3명의 위원은 이 사건을 전원위원회에 회부해 재논의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다음 날 소위원회 밖 ‘윗선’의 압력으로 소위원회 결정은 전원위원회에 이 사건을 회부하는 것에서 사실상 무혐의인 심의절차 종료로 뒤바뀌었다. 무엇보다 소위원회 위원장으로 독립성을 지켜야 할 주심(상임위원)은 ‘소위원회에서 심의절차 종료로 마무리하라’는 윗선의 외압에 결론을 바꾸는데 앞장섰다.

공정위는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아 전원위원회에 회부할 시간이 없어 소위원회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소위원회의 심의절차 종료 결정으로 심사관의 검찰 고발 의견이 묻히면서 공소시효에 앞서 결정을 내린 것은 무의미해졌다.

여기에다 면죄부 판정을 되돌릴 기회도 있었다. 공정위가 올해 초 조기에 재조사를 해 가습기 메이트의 인체 유해성을 인정한 환경부 입장을 확인하고, 공소시효 연장을 위한 새로운 증거를 찾았다면 두 업체를 검찰에 고발할 수 있었다.

면죄부 판정이 논란을 일으키자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가습기 살균제 사건 처리 평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 TF는 20여일 지난 지금까지 회의 한번 열지 않았다. TF를 만든 게 국회의 국정감사를 겨냥한 ‘시간끌기용’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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