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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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메멘토 모리

입력 2017-10-20 17:25:02


전쟁에서 이기고 로마로 돌아오는 개선장군은 화려한 행진을 한다. 이때 장군 바로 뒤를 따르는 노예는 그가 듣게끔 계속 외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로마 시대 개선식의 전통으로 ‘지금 인간으로서 최고 영예를 누리고 있지만 너 역시 언젠간 죽는다. 교만하지 말라’는 뜻이다.

숙적 안토니우스와의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 내전을 평정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 황제)는 BC 29년 로마 시민들의 열광 속에 3일 동안 성대한 개선식을 갖는다. 그도 노예의 그 소리를 끊임없이 들었으리라.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파 가담자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손에 넣었다. 그 전에 승리자들은 반대파와 친족까지 모두 살해하고 숙청했지만 34세의 절대권력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안토니우스를 끝까지 추종한 자들까지도 원로원에 앉혔다. 그는 반대파들의 은밀한 두려움을 그대로 방치하는 쪽을 선택했다’(로마인 이야기 6권, 팍스 로마나, 시오노 나나미). 옥타비아누스가 겉으로만 공화정을 유지하고 사실상 1인 독재를 하는 등 영악하고 교활하다는 평가도 받지만, 그의 정치는 그를 200년의 팍스 로마나 시대를 열어젖힌 제국 로마의 첫 황제이자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어줬다.

청와대가 각 부처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구성 현황과 향후 운영 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청와대 캐비닛 문건이니, 과거 정부의 일탈적 행위니, 부당한 지시니 하는 것들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닐 게다. 그런데 꼼꼼히 살펴보면 이게 위법인지, 부당한 행위인지, 지금 정권에서도 이런 수준은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들도 적지 않다. 물론 지난정부에서 일부 일탈행위가 있었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당 회의나 국정감사에서는 애매한 자료와 일방적 신념에 찬 주장들이 뒤섞여 적폐라는 이름으로 마구 제기된다. 완장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리라는 것쯤은 경험칙으로 다들 알고 있다.

메멘토 모리를 설명할 때 확 와닿는 말이 따라다닌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쯤에서 메멘토 모리를 되뇌어볼 사람이 많다. 정말 적폐청산을 성공시키려거든….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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