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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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김나래] 나쁜 그리스도인

입력 2017-10-20 17:25:02


아이는 몹시 화가 난 듯했다. 책장 앞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고는 못마땅하다는 듯 씩씩거렸다. 아이의 손엔 ‘나쁜 그리스도인’이란 책이 들려 있었다. “나쁜 그리스도인이 어딨어? 예수님 믿는 사람은 다 착하지. 이 책이 진짜 나쁜 책이야.” 어른들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화를 내는 여섯 살 딸내미의 엉뚱한 반응 앞에서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나쁜 사람들이 세상에 진짜 있다고, 그래서 예수님까지 욕 먹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말을 차마 들려주고 싶진 않았다.

‘나쁜 그리스도인’(살림)이라는 자극적인 한국어 제목과 달리 원제는 ‘Unchristian’이다. ‘기독교인답지 못한’ 또는 ‘기독교 정신에 어긋나는’이란 뜻을 담고 있다. 책은 미국의 공신력 있는 기독교전문 리서치회사 바나그룹이 미국의 16∼29세 젊은 비기독교인을 상대로 기독교인의 이미지를 조사한 결과를 담고 있다. 2007년 미국에서 출간 당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고, 그 이듬해 한국에 번역·소개됐다.

10년 전 나온 책을 두고, 3년 전 있었던 딸의 에피소드를 새삼 꺼내 든 건 이유가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어느 때보다 개혁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기독교인의 모습은 ‘나쁜 그리스도인’의 이미지와 갈수록 일치율이 높아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한 6가지 이미지는 이렇다. 첫째, 미국의 젊은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이 ‘위선적’이라고 했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척하지만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얘기다. 또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을 전도의 ‘대상’으로 여기고 열을 올리는 것에 불쾌해했다. ‘동성애를 혐오한다’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타인을 판단하려 든다’ ‘안일하다’는 이미지까지. 누군가 “한국 기독교인들 얘기 아니냐”고 묻는다면, 뭐라 반박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는 31일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이 다가오면서 여러 행사가 한창이다. 그런데 정작 세상은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주변에 많은 비기독교인 중 누구 하나 “어떤 날이기에 그렇게 소중히 기념하느냐”고 묻는 이가 없다. 기독교인들이 ‘나부터 새로워지겠다’고 다짐하면,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당신들만 잘하면 될 것 같은데’라는 식의 냉소적인 댓글이나 ‘기독교인은 그냥 뭘 해도 싫다’는 적대적이고 냉랭한 반응에 마음이 아팠다.

만약 10년 전처럼 한국에서 같은 방법으로 조사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짐작건대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암울한 결과를 전망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더 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통계청의 인구총조사 결과를 보면 15∼19세 기독교인 비율은 20%에 그쳤다. 20∼24세는 18%, 25∼29세는 17%로 조사됐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아는 이보다 모르는 이가 훨씬 많다는 얘기다. 어쩌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는 본연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왜곡된 현실의 모습으로 이미 규정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우리에게 전해준 1세기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생각해본다. 그들은 나라나 민족, 언어로 비기독교인들과 구별되지 않았다. 그들은 삶으로 자기들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노예와 주인, 여성과 남성, 아이와 어른 구분이 명확하던 시절, 한곳에 모여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고 베풀었다. 손가락질 당하고, 핍박받으면서도 자신들을 미워하는 이들을 사랑했다. 세상의 법을 지키면서도 이를 뛰어넘는 삶을 살았다.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살았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이와우)이나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IVP)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시대를 거스르는, 가치전복적인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때론 죽음까지 각오하면서 우리에게 물려준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자문한다. 과연 우리는 다음세대에 어떤 이름을 물려주게 될까.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위대한 이름을 남기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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