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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신창호] 마르틴 루터 과잉시대

입력 2017-11-03 17:40:01


종교개혁.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독일 비텐베르크성 교회 정문에 붙이면서 시작된 프로테스탄트 운동을 뜻한다. 바로 이 종교개혁 500년을 맞는 올해 연초부터 한국교회의 굵직굵직한 행사엔 반드시 ‘종교개혁 500주년’이란 단어가 들어갔다. 큰 교단 교단장과 유명 목회자들, 이론가들이 참석한 토론회와 학술대회, 포럼은 셀 수도 없이 열렸다.

행사들을 요약하면, 500년 전 서른넷의 젊은 수도사가 “하나님의 구원은 가톨릭교회의 ‘죄를 면죄해주는 부적’ 장사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오직 성경 말씀을 믿고 따를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한 행동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루터 영화가 개봉되고 종교개혁 연극이 연중 상연된다.

한마디로 ‘루터, 루터, 루터’인 셈이다. 500년 전 이 독일인의 행동이 타락한 가톨릭교회로부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했는지, 그래서 그때 탄생한 프로테스탄트교회는 얼마나 큰 신앙의 축복을 받았는지, 그리고 가톨릭 그리스정교 러시아정교 콥트 등 다른 기독교 지파들보다 얼마나 우월한지를 알리고, 알리고 또 알린다.

목회자들은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오직 성경)’ 같은 라틴어까지 동원하며 지식을 뽐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라틴어가 종교개혁자들이 그렇게도 반대했던 ‘죽어버린 식자(識字)들의 문어(文語)’였다는 사실을 알려주진 않는다. 20세기 초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정도를 읽으면, 종교개혁이 가진 인류사적 의의는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그런데 그렇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신앙인이 되진 않는다. 올해 열린 각종 종교개혁 관련 포럼을 깊이 음미한다고 해서 역시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긴 힘들다.

이 뜻 깊은 해에 고민해야 할 핵심은 다른 데 있을 듯하다. 루터의 행동이, 칼뱅과 츠빙글리의 행동이 크리스천,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던지는 의미가 뭘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야 하는 일이다.

종교개혁가들은 신앙의 형식을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신앙의 내용만 고민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왔으며,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또 부활했는지에 집중했다. 이걸 제외하면 다른 건 모두 부차적이고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선포했다. 성경은 ‘누구를 배제하라’ ‘누구와 관계를 끊으라’ ‘누구를 증오하라’고 하지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와 피가 다르다고, ‘나’와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배제하라 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더 사랑하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채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진 건 바로 우리들 마음속의 이기심, 우리들 머리속의 배타성 때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랑을 기억하는 크리스천이라면 결코 다른 사람을 배제하거나 차별할 수 없다. 다른 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도 똑같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선 안 된다.

독립선언을 기초했던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취임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1700년대 갓 등장한 신생국 미국에서 온갖 기독교 지파들이 서로 우위에 서려고 혈투를 벌이던 때였다. “우리들은 장로교도도, 감리교도도, 가톨릭교도도, 침례교도도 아닙니다. 우린 모두 하나님의 자식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천입니다.”

진짜 크리스천이라면 ‘루터, 루터, 루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루터가 아무리 훌륭한 종교개혁가라 해도 그는 그저 사람일 뿐이다. 우리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연결해주려 했던 하나의 매개자에 불과했을 뿐이다.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신앙의 형식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 한복판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곰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의 성공을 위해 신앙의 힘을 빌리고 있는지, 내 안위를 위해서만 절대자에게 기도하고 있진 않은지 묵상해야 하지 않을까.

신창호 종교기획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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