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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현대문명의 혈관’ 물류·교통의 메커니즘 분석

입력 2017-11-10 05:05:03


세상의 혈액이 순환하는 통로인 데도 쉽사리 그 놀라운 메커니즘을 체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바로 물류와 교통의 세계다. 상품이나 사람을 지금 이곳에서 미래의 저곳으로 옮겨놓는 물류와 교통의 체계는 현대 문명의 버팀목일 것이다.

‘배송 추적’은 1989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한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이 세계가 어떤 얼개를 띠는지 분석한 신간이다. 원제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문(門)에서 또 다른 문(門)으로 이어지는 경이로운 이동(移動)의 세계를 한 권에 담았다.

책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건 저자의 필력이다. 아이폰 알람소리를 듣다가 스마트폰 부품이 각각 어떤 경로를 통해 한 데 모여 아이폰이 만들어졌는지 전하는데, 그 이동 거리를 모두 합하면 38만6000㎞에 달하더라는 계산을 내놓는다. 주방에 있는 커피 원두를 비롯해 각종 상품이 우리 곁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궤적을 그렸는지 들려주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자동차 중심의 문화가 만드는 살풍경을 그리면서 이런 문화를 재고하자는 메시지도 비중 있게 실려 있다. 매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는 사람은 어지간한 전쟁의 희생자보다 많은 게 사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조용한 재난’이라고 명명하면서 이렇게 되묻는다.

“정확한 GPS칩을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나라가 어떻게 매일 97명을 죽이고 매분 8명을 다치게 하는 2톤짜리 금속 상자에 사람을 옮기는 일을 맡길까?”

무인 자동차 상용화가 가져올 혁명적인 변화를 전망한 대목이나 물류 분야 종사자들의 삶을 세세하게 풀어낸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이런 문장으로 이 책을 소개한다. “매일 사람과 물건을 문에서 문으로 옮기는 이 방대한 체계의 속사정은 어떨까? 간단해 보이는 이 질문 때문에 이 책이 나왔다.” ‘배송 추적’을 마주할 독자들은 저자의 표현처럼 “마술적이면서도 일상적인 현대의 기적”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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