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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사랑을 잃은 이들이 가는 길

입력 2017-11-17 05:05:01
높은 산 위에 십자가가 있는 건물이 보인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등장하는 남자는 존재의 근원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로 높은 산에 올라 여러 교회를 찾아다닌다. 이 소설은 각자가 가진 믿음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픽사베이 제공




“인간의 영혼은 사랑이라는 집에 거한다. 그렇다면 이 사랑을 잃은 인간은 어디로 갈 것인가?” ‘파이 이야기’(2001)의 작가 얀 마텔(54)이 신작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파이 이야기’는 40여개국에서 1000만부 이상 팔린 맨부커상 최대의 베스트셀러. 이 작품에서 인도 소년 파이의 믿음을 담았던 그는 신작에서 더 깊고 폭넓게 이 믿음이란 주제를 다룬다.

그가 표현하는 믿음은 표면적으로 종교적 신념이지만 실제 그가 드러내고 싶은 것은 광범위하다. 마텔은 한 인터뷰에서 “‘파이 이야기’에서 시작한 믿음에 관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며 “내가 말하는 믿음이란 어떤 사람, 정치적 운동, 스포츠 팀 등에 대한 애호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믿음이다. 나는 그 철저하게 불합리한 현상에 압도됐다”고 말했다. 파이가 생에 대한 투지와 신념을 갖고 바다를 건넌다면 ‘포르투갈의 높은 산’ 주인공들은 신념을 잃는 데서 출발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지독한 슬픔에 빠진 세 남자가 상실 그 이후의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먼저 1904년 포르투갈 리스본 고미술박물관에서 일하는 토마스. 숙부의 하녀 도라와 사랑에 빠진다. 도라는 “우리는 외톨이가 될 것”이라며 그의 청혼을 거부하고 어느 날 갑자기 디프테리아에 걸려 이 세상을 떠난다. 그는 이때부터 뒤로 걷기 시작한다. 신을 향한 토마스의 반발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신부가 17세기에 남긴 일기장을 발견한다. 신부는 일기장에서 “이곳이 집이다”를 반복한다. 사랑이라는 집을 잃은 토마스는 그 구절에 사로잡힌다. 급기야 신부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십자고상을 찾아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떠난다.

다음 남자는 39년 포르투갈 높은 산 인근에 사는 병리학자 에우제비우. 그는 사고로 아내 마리아를 잃는다. 어느 날 죽은 마리아가 그를 찾아온다. 아내는 “어떻게 신앙과 이성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요? 당신에겐 이야기가 해결책이에요. 이야기는 이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신을 예수 곁에 있게 해주니까요”라고 하면서 추리 소설을 건넨다. 누군가에겐 이야기가 믿음이 되고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걸까.

세 번째 남자는 80년대 캐나다 상원의원 토비스. 아내와 사별한 그는 미국의 영장류 연구소를 방문했다가 몽상하는 듯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침팬지와 교감한다. 그는 거금을 주고 ‘오도’라는 이 침팬지를 사들이고 오도와 함께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 토비스는 어느 날 작은 예배당에서 침팬지 형상을 한 십자고상을 발견하고 놀란다.

세 이야기는 모두 사랑하는 이의 죽음, 십자고상, 여행, 침팬지, 포르투갈이라는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 마텔은 세 남자의 삶을 중층적으로 그리면서 신과 믿음, 삶과 죽음, 인간과 동물 등 그가 천착해 온 문제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제기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파이 이야기’가 다 읽은 후에야 다시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라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읽는 중에 다시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라고 했다.

종교적 상징이나 비현실적 요소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세 이야기는 한 세기에 걸친 긴 시간, 슬픔과 사랑의 감정을 오가며 독자를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마텔은 한국 독자에게 “책은 자동차 여행이다. 이 작품은 외진 마을에서 또 내면의 감정 속에서 기묘한 것들을 탐색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기발한 상상력이 빚어낸 경이로운 이야기에 대한 자신감이다. 마텔의 말대로 이 소설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신비한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오르는 길로 인도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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