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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현장 르포] 집 뛰쳐나온 주민들 “어디서 자나” 발동동

입력 2017-11-15 22:20:01
15일 오후 발생한 지진으로 포항시내가 폭격을 맞은 것처럼 변했다. 시내 한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필로티 기둥 일부가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게 서 있다. SNS 캡처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마산리에서 한 노인이 무너져 내린 벽돌 사이로 황급히 이동하는 모습이다. 매일신문 제공


15일 지진의 충격으로 포항시내 한 아파트 외벽이 갈라져 있다.뉴시스


진앙 인근 흥해읍 주민들
더 큰 지진 걱정에 귀가 못해
대피소 흥해실내체육관엔
피난 온 1000여명으로 가득
수능 문제집 푸는 수험생도

한동대 건물 일부 부서져
놀란 학생들 운동장으로 대피
19일까지 임시 휴교 결정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15일 경북 포항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골목마다 무너진 담과 떨어진 외벽 조각이 널브러져 있었고 주민들은 추운 날씨임에도 하루 종일 공포에 몸을 떨며 집 밖을 맴돌았다.

오후 9시40분쯤 찾아간 진앙 인근 포항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은 피난 온 주민들로 가득 찼다. 지진 발생 후 불안해하는 주민들을 위해 포항시가 대피소로 정한 곳이다. 체육관은 이미 1000여명의 주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체육관 인근 도로는 몰려드는 주민들의 차량으로 체증이 빚어졌다. 체육관 입구에는 모포 등 구호물자가 쌓여 있었고 자원봉사자들이 주민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한 봉사자는 “500인분 식사를 준비했는데 다 떨어져 이후로는 라면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체육관에서도 편히 쉬지 못했다. 가족끼리 지인끼리 둘러앉아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수능 문제집을 푸는 수험생도 있었다. 동지여고 김윤하(19) 학생은 “지진도 무섭지만 연기된 수능이 더 걱정”이라며 “리듬이 깨져 불리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김양의 어머니 오모(40)씨는 “아이는 수능이 연기돼 싫겠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말했다.

윤상준(60)씨는 “아파트 4층에 사는데 신발만 갈아 신고 바로 왔다”며 “집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나 여기서 잘 생각”이라고 하소연했다.

앞서 둘러본 흥해읍 성내리는 대다수 집이 피해를 입었다. 벽이 갈라지고 담이 무너진 곳은 물론 쇠로 된 대문이 떨어져 나간 집도 있었다. 집 내부도 엉망이었다. 선반 위에 놓여 있던 화분과 집기 등이 떨어져 난장판이 됐다. 집에서 뛰쳐나오다 넘어져 다친 주민도 있었다.

성내리 주민 최경자(73·여)씨는 “밖에 있다가 지진이 나서 집으로 급히 왔는데 장독이 깨져 바닥에 된장이 쏟아져 있고 집안 곳곳에 금이 가 있어 너무 놀랐다”며 “청소를 하려 해도 여진이 무서워 집에 머물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했다.

놀란 주민들은 집에 머물지 못하고 골목 등으로 나와 이웃과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조만간 더 큰 지진이 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일부 주민은 아예 집에서 자는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심노미(69·여)씨는 9살 손자를 데리고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지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흥해읍에 위치한 한동대도 피해가 컸다. 건물 외벽이 일부 떨어져 나간 것은 물론 내부도 벽면과 타일 등이 떨어져 어지러웠다. 화장실은 누수가 발생해 천장에서 물이 샜다. 지진에 놀란 학생들은 기숙사와 학교 건물 등에서 뛰쳐나와 운동장으로 대피했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대피하다 보니 일부 학생은 넘어져 찰과상을 입거나 발을 삐어 치료를 받았다.

운동장으로 나온 학생들은 추위 탓에 이불 등으로 몸을 감싼 채 한참을 떨어야 했다. 전화로 가족과 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운동장에 있던 한 학생은 “기차표를 구해 (본가가 있는)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모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하는 학생도 있었다. 미처 짐을 챙기지 못한 학생들은 조를 나눠 학생 관리자의 인솔 아래 기숙사로 들어가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나오기도 했다.

이 대학 1학년 김선일(20)씨는 “채플시간에 의자와 전등이 마구 흔들려 강당에 있던 800∼1000명의 학생이 모두 대피했다”며 “모두 놀라 뛰쳐나왔지만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에는 자녀를 데리러온 학부모들의 차량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자녀를 태운 차량은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갔다. 3학년 딸을 데리러 대구에서 왔다는 백모(56)씨는 “지진 소식을 듣고 바로 왔다”며 “딸과 딸 친구들을 데리고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측은 학생 안전을 위해 일요일까지 휴교를 결정했으며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다른 숙소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포항=최일영 이택현 기자 mc10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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