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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전정희] 협량한 일본

입력 2017-11-17 17:30:01


“아아, 왜노는 원수다. 마땅히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다.”

제주 사람 장한철(1744∼?)의 표류 일기 ‘표해록’의 한 대목이다. 양반 자제였던 장한철은 향시에 합격하고 1770년 12월 25일 한양에서 치러지는 대과(大科)에 응시하고자 제주포구를 출발했다가 전남 완도군 노화도 앞바다에서 조난을 당했다. 29명이 탄 배였다. 그들은 3일간의 표류 끝에 오키나와 한 무인도에 닿아 구조되기만을 기다렸다.

조난자들은 해안 길이가 4㎞나 되는 비옥한 섬에 사람이 살지 않아 의아해 한다. 해적의 노략질 때문이 아닌가 하고 장한철이 걱정을 하자 사공이 “해안이 평온한데 어찌 유독 이곳에만 수적이 있겠는가” 하고 말한다.

그리고 정월 초하루를 맞았다. 대낮에 멀리 한 점의 돛대가 동쪽 바다 너머로부터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높은 언덕에 올라 사력을 다해 연기를 피우고 죽기를 흔들며 부르짖었다. 날이 저물 즈음 머리에 푸른 수건을 동여매고 검은 장의를 입은 무리가 나타났다. 장의만 입었을 뿐 아래는 가리지 않은 왜인들이었다. 험한 얼굴이었다.

배에서 내린 왜인 10여명은 장검과 단검으로 조난자를 에워싸고 낄낄거렸다. “우리는 남해불장(南海佛將)으로 서역으로 가고 있다”는 자들이었다. 장한철이 “조선사람으로 표류하다 여기에 이르렀으니 자비심으로 구조해 달라”고 청했다. 한데 왜구들은 “보물을 넘겨주면 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죽으리라”며 협박했고 끝내 조난자 모두를 발가벗기고 꽁꽁 묶어 나무 위에 거꾸로 매달아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조난자들이 살기 위해 채취한 생복을 빼앗은 뒤 돌아가 버렸다. 강도 만난 유대인을 도와주는 사마리아 사람 심성이 인간의 본성이건만 그들은 되레 강도보다 더한 짓을 해댔다.

장한철은 “왜놈이여 왜놈이여 마땅히 참할 만하구나. 사람들이 천 번이라도 그 칼로써 마땅히 찌를 만하구나”라며 탄식한다. “대저 하늘이 내린 생물들은 모두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겨 우리 몸을 데우고, 뱀도 비록 독이 있다 하나 가히 우리 병을 낫는 약으로 쓰는데 오직 저 왜놈이란 종자는 사람에게 터럭만한 이로움도 주지 못하니 조물주는 어찌 이런 종자를 만들어냈을까”라며 치를 떤다.

그들은 곡절 끝에 월남에 살고 있는 명나라 유민의 상선에 구조되어 돌아올 수 있었다. 귀국 과정에서 재조난 등으로 8명만이 살아남았다. 장한철은 1775년 과거에 급제해 제주 대정현감과 강원도 흡곡 현령 등의 벼슬살이를 했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글로벌한 사회에 열린 마음으로 일본을 바라보려 해도 그들 종자가 참 협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기간 중 벌어진 ‘독도새우’ 만찬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모신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발끈한 것을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다. 또 포항 지진에 대한 일본의 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감정이다. 후쿠시마 지진해일 당시 한국인이 보여준 염려와 성금, 그리고 한국교회의 현장 구호활동 등을 익히 알건데도 NHK 등 일본 언론은 ‘포항 지진 후 수능이 연기되어 한국 사회가 시험지 관리 등으로 동요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생애 첫 지진 경험으로 공포에 떠는 한국인을 위해 위로 또는 재난방재 기술 제공이라도 하겠다고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뭐 이런 종자들이 있는가 싶다.

우리는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라는 치 떨리는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이웃이므로 화통하게 손을 내미는 것이 한국인의 심성이다. 우리 정부가 몇 차례 베트남전 참전을 사과한 것은 이웃과의 미래를 향한 우리의 심성이 담겼다. 반면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가 명백한 사실이라는데도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저지’ 등으로 덮기 바쁘다. 왜구가 남해불장 완장 차고 국제사회를 협박하는 꼴이다.

살면서 독한 종자 만나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일본이 ‘이웃집 웬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종교국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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