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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시간은 현재의 연속… 지금에 충실하라

입력 2017-11-24 05:10:02
지팡이를 든 노인이 기억을 상징하는 나무와 세월을 의미하는 시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시간에 대한 온갖 지식을 집대성한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는 현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픽사베이 제공




이제 곧 올해 달력도 12월 한 장만 달랑 남게 된다. 이맘때면 한 해가 무척 빨리 흘러간 것 같다. 왜 매년 시간이 더 빨라진다고 느끼게 되는 걸까. 미국 뉴요커 수석편집장을 역임한 과학기자 출신 저술가 앨런 버딕은 신간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Why Time Flies)’에서 인간의 생체시계를 중심으로 시간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를 탐구한다.

“나는 시간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여행하고 관련 전문가를 만나면서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어쩌면 당신도 괴롭혔을 질문에 대해 해답을 찾으려 했다.” 먼저 우리가 어떻게 시간을 인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답. 여기에는 인간 몸 안의 생체시계(circadian clock)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주요 생체시계는 뇌 안의 ‘시교차 상핵’으로 알려져 있다.

생체리듬을 재는 손쉬운 방법은 체온을 재는 것이다. 평균 체온은 36.9도이지만 체온은 수시로 변한다. 오후 3, 4시에 가장 높고 동트기 전에 가장 낮다. 체온은 매일 시계가 작동하듯 규칙적으로 2도가량 오르내린다. 다른 신체 기능도 이 리듬을 따른다. 따라서 생체시계를 고려해 일과를 짜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알코올은 밤 10시에 가장 천천히 분해되기 때문에 술자리는 이 시간 전에 끝내는 게 좋다. 피부세포는 자정과 새벽 4시 사이에 가장 왕성하게 분열하기 때문에 피부 미용과 큰 키를 위해선 이 시간에 자야 한다. 이른 시간일수록 통증을 적게 느끼기 때문에 치과 시술은 오전에 받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버딕은 그간 축적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이 어떻게 시간을 인지하는지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그럼 우리는 언제 시간이 빠르게 또는 느리게 흐른다고 인식할까. 시간 지각과 운동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실험을 보자. 한 실험집단에게 휴식 중인 발레리나와 역동적인 포즈를 취한 발레리나 조각 사진 2장을 동일한 시간 보도록 했다.

그런데 참가자들은 어려운 자세를 취한 발레리나 이미지가 편안한 상태의 발레리나보다 더 오래 노출됐다고 답했다. 복잡하고 힘든 상황 속에 있을 때 시간이 더 천천히 흐른다고 느낀 것이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일을 겪을 때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호소하는 걸 설명해주는 연구 결과다. 버딕은 이를 근거로 주관적인 시간이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는 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는 시간의 길이에 대한 감각은 나이에 반비례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1년이라도 50세 남자는 열 살 소년에 비해 5배나 빠르게 흐른다고 느낀다는 거다. 50세 남자에게 1년은 인생의 50분이 1이지만 열 살 소년에겐 10분의 1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딕은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점이 있다면 시간에 대해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라며 시간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참고 문헌만 200개가 넘는 역작의 결론치고는 좀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오히려 그는 시간은 영원한 현재에 불과하고 현재에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색으로 독자를 이끈다.

“과거 현재 미래는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모두 현재다. 즉 과거 사건은 지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존재하며 현재 사건은 바로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것 속에 존재하고 앞으로 다가올 사건은 지금 우리가 품고 있는 기대 속에 존재한다.” 시계를 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라는 주문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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