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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우린 어쩌다 지독한 가족주의에 빠졌나

입력 2017-11-24 05:05:05
아동 인권 문제를 조명한 영화 ‘4등’(2016)의 한 장면. 수영선수인 준호(유재상)는 허구한 날 코치의 체벌에 시달린다. 하지만 엄마는 “준호가 맞는 것보다 (수영대회에서) 4등 하는 게 더 무섭다”며 이 사실을 모른 척한다. 저자는 ‘4등’에 대해 “아이를 자신과 분리된 독립적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과보호 부모의 심리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고 적었다. 프레인글로벌 제공




한국의 가족주의를 도마에 올린다. 엔간한 국가들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가족의 힘은 떨어지고 개인주의가 단단해졌는데 한국은 예외였다. 많은 한국인은 오늘날에도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기댈 곳은 가족밖에 없다” “믿을 건 가족뿐이다”…. 우린 어쩌다 이토록 배타적인 가족주의에 빠진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책에 담긴 이런 대목으로 갈음할 수 있다.

“뭔가를 높이 쌓아올릴 때에는 발을 헛디뎌 추락할 경우를 대비해 안전망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안전망 없이 오로지 더 높이 쌓는 일에만 몰두해온 게 한국의 근현대사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기댈 유일한 언덕은 ‘사적 안전망’인 가족이었다.”

어쩌면 여기까진 판에 박힌 이야기다. 이 책이 각별한 건 이런 가족주의가 만드는 살풍경을 생생하게 전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부모의 ‘소유물’로 전락한 아이들은 온갖 학대에 시달린다. “자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려는” 부모도 적지 않다. 많은 아이들은 ‘학대’ ‘방임’ ‘과보호’가 만든 삼각형 속 어떤 지점에 놓여 있다.

‘이상한 정상가족’은 한국 사회의 고약한 가족주의를 바탕으로 아동 인권의 문제를 파고든 작품이다. 저자 김희경(50)씨는 일간지 기자로 18년을 일했고, 신문사를 그만둔 뒤엔 6년간 국제구호개발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에서 권리옹호부장을 맡았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저널리스트의 글쓰기는 넓지만 얕고 전문가의 그것은 좁지만 깊다고. 그렇다면 저자의 글솜씨는 어떨까. 기자와 전문가, 두 ‘분야’를 모두 경험해서인지 책을 읽노라면 ‘깊이’와 ‘넓이’를 두루 느낄 수 있다. 어떤 주제가 나오든 좌고우면하지 않고 말하려는 지점을 향해 내달리는 필력 덕분에 가독성도 상당하다.

일단 제목에 등장하는 ‘정상가족’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저자가 명명한 정상가족은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구조나 사고방식”이다. 우리 가족은 정상가족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가족 울타리 안에서는 억압을, 울타리 밖에서는 차별을 만든다. 이런 생각에 젖은 사람들은 정상가족 바깥에 있는 다른 형태의 가족은 인정하지 않는다. 미혼모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이 대표적이다.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한국 사회에서 미혼모는 “가족 규범의 일탈자”다. 다문화 가정을 향한 시선도 호의적이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 내놓은 ‘국민 다문화수용성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31.8%는 외국인을 이웃으로 삼길 원치 않았다. 미국(13.7%) 오스트레일리아(10.6%) 스웨덴(3.5%)과 비교하면 한국인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사고방식 탓에 이들 가정 자녀에게 피해가 간다는 점이다. 사회적 차별을 견디다 못한 미혼모는 아이를 버린다. 지난해 국내외에 입양된 아이 880명의 92%는 미혼모 자녀였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그렇다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깨뜨릴 방법은 없는 걸까. 저자의 해법은 간명하다. 가족이 걸머진 짐을 사회가 떠안자고, 가족 중심적인 사고를 떨쳐내자고 호소한다. “삶은 개인주의적으로 살고, 해법은 집단주의적으로 찾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어린이를 포함해 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자는 쪽으로 뻗어나간다. 이 같은 주문은 지난 6월 출간된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원더박스)에 실린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이 책은 핀란드 출신 저널리스트가 전하는 북유럽 사회 이야기였다. ‘우리는 미래에…’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은 ‘이상한 정상 가족’이 전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노르딕 사회의 원대한 야망은 개인을 가족 및 시민사회 내 모든 형태의 의존에서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었다. 가난한 자들은 자선으로부터,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자녀를 부모로부터, 노년기의 부모를 성인 자녀로부터. …모든 인간관계가 완전히 자유롭게 진실해지도록 그리고 오직 사랑으로 빚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독자들은 가족주의를 바꾸지 않고선 한국 사회가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주장에 수긍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듯하다. 지금 한국인이 풀어야할 문제지가 있다면 가족주의

문항이야말로 가장 배점이 높은 문제여야 한다고.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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