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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내 안에 깃든 빈자리, 공허는 오직 당신의 시를 읽을 때 채워집니다”

입력 2017-11-24 05:05:05


봉인된 우정을 반세기 만에 열어보는 떨림이랄까. ‘르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내 안에 깃든 빈자리가, 공허가 오직 당신의 글을 읽을 때 채워집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가 시인 르네 샤르(1907∼1988)에게 썼던 편지의 한 대목이다. 카뮈가 샤르의 시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알 수 있다.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는 카뮈가 교통사고로 숨지기 직전까지 두 남자가 13년간 주고받은 편지 184통을 묶은 서간집이다. 국내 첫 출간이다. ‘이방인’으로 주목을 받은 카뮈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페스트’를 썼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저항운동 지도자로 활약했던 샤르는 프랑스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두 거장이 쓴 편지에는 각자의 문학적 열정, 시대적 고민, 인간에 대한 연민이 녹아 있다. 원고를 의뢰하는 일로 1946년 처음 편지를 주고받은 둘은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한 달 내내 손 놓을 수 없는 작업에 파묻혀 있습니다. 하루에 열 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출산은 더디고 힘듭니다. 게다가 아주 못난 아이가 태어날 것 같습니다.’

카뮈가 자신의 작품 ‘반항하는 인간’을 집필하는 고통을 샤르에게 토로하는 부분이다. ‘1957년 10월 17일 목요일을 최고의 날로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절망적인 날들 사이에서 내게는 이날이 최고의 날이자 가장 환한 날입니다.’ 샤르가 카뮈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면 쓴 편지다. 우정이 깊어지면서 둘은 서로를 그리워하게 된다.

‘친애하는 알베르, 어디쯤 계십니까? 문득 당신을 잃어버렸다는 잔인한 느낌이 듭니다. 시간이 도끼의 모습을 띠는군요. 언제쯤 오시나요?’ 샤르가 카뮈에게 쓴 편지다. 두 사람이 연인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편집자는 “두 사람에게는 각각 아내와 가정이 있었다”며 “카뮈와 샤르는 문학적 동반자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음악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시인 폴 엘뤼아르 등이 편지 중간 중간에 언급된다. 당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의 여정에 동행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각주 350여개는 편지의 맥락을 알려주는 충실한 길잡이가 된다. 전후 혼란스러운 유럽에서 문학에 대해 치열하게 고뇌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투쟁했던 위대한 작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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