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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정체불명의 희곡에 감춰진 비밀

입력 2017-12-15 05:10:01




문학동네가 주관하는 문학동네소설상 23번째 수상작이다. 이 소설을 거의 단숨에 읽은 뒤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알제리의 유령들’과 ‘마르크스’를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쳐본 것이다.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어디인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으로 등단한 황여정(43·사진) 작가는 1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제 의도대로 읽힌 모양이네요. 다른 분도 그랬다고 했는데…”라며 웃었다.

소설은 의문의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과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어느 여름 벽지 위에 핀 곰팡이에서 세계 지도를 읽어내는 소년 ‘징’과 이 소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소녀 ‘율’의 대화로 시작된다. 어느 날인가부터 율의 아버지는 책을 무서워하기 시작했고 다음엔 글자가 있는 종이를 무서워했다. 그러던 아버지는 집안의 책은 물론 벽지마저 모조리 뜯어내 태워버린다.

율의 부모와 징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멀리 여행을 갔던 율은 우연히 징의 어머니를 만난다. 율은 징의 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을 읽게 된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각 부마다 서로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화자의 이야기를 통해 ‘알제리의 유령들’이란 희곡을 둘러싼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

소설은 간결한 문장으로 짜임새 있게 전개될 뿐만 아니라 삶과 역사 사랑에 대한 문제를 부단히 제기한다. 예를 들면 이런 문답이 여러 차례 나온다. “살아 있다는 건 무엇입니까?” “죽지 않았다는 것이지”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게”….

‘알제리의 유령들’ 희곡 비평에는 이런 해석도 나온다. “그들이 유령인 이유는 과거가 없기 때문이며 과거가 없다는 것은 한정된 시간 밖으로 나와 무한의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규정되기를 시도함으로써 무한의 휴식을 끝내려는 것이다.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므로.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작가는 어떤 행동을 감행하거나 무언가를 쓰는 것이 기억의 재현이자 사랑의 행위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는 민주화운동에 관여해 오랫동안 고초를 겪기도 했던 소설가 황석영(74)의 딸이다. 황 작가는 “전남 광주에서 성장했다. 내가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보거나 전해들은 것들이 작품에 녹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작품은 “세련되고, 영리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평을 받았다. “좋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그가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사랑을 기록해갈지 궁금하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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