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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도 수고했어∼’ 노을이 주는 따뜻한 위안

입력 2017-12-21 05:10:01
경남 사천 실안해안도로에서 본 낙조가 황홀하다.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해와 바다, 조각배처럼 떠 있는 작은 섬들과 등대, 죽방렴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장관이다.
 
각산 정상에서 본 남해 앞바다. 웅장한 자태의 삼천포대교와 창선대교가 섬과 섬을 이으며 바다를 가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사천해전 승첩비가 있는 선진리성.
 
삼천포 동쪽 남일대해수욕장 인근 코끼리 바위.




한 해가 저물어간다. 가는 해가 아쉬운 시점이다. 이런저런 상념과 조급증에 몸과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이럴 때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조용히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는 것도 좋다. 경남 사천으로 떠났다. 사천이란 지명은 다소 생소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삼천포다. 오랜 세월 회자됐던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표현 때문이다. 그 삼천포를 품고 있는 곳이 사천이다.

사천에서 유명한 곳으로 실안해안도로가 꼽힌다. 넓은 바다에 떠있는 크고 작은 섬과 등대가 한 폭의 그림을 펼쳐놓는다. 출렁거리는 파도 옆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길을 따라 노을이 춤추기 시작하면 바다는 온통 붉게 물들며 장관을 연출한다. 따뜻한 색감이 온 세상을 감싼다. 사천8경의 하나이자 우리나라 9대 일몰에 꼽혔던 실안낙조다. 힘든 한 해를 보낸 이들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하는 듯 따뜻한 온기를 전해준다.

죽방렴을 따라 고기잡이 나선 배는 하얀 물거품을 남기며 바다 위에 선을 긋는다. 죽방렴은 조류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말뚝을 조류가 흐르는 방향에 맞춰 V자로 벌려두고 끝에 원통형 대발을 설치한다.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한 물고기가 대발에 모이게 된다.

이 길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또 하나는 삼천포대교다. 다리 너머는 남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연상케 하는 웅장한 자태를 내뿜는다. 낮에는 범선의 돛대처럼 바다 위를 가로지른 풍경이 멋있고 금·토·일요일 밤에는 오색의 조명이 반짝이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뒤편 각산(角山·416m)에 오르면 대교가 품은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오르는 길에 각산산성을 만난다. 동국여지승람은 백제의 전성기 때 진주가 백제 영토였는데, 605년(무왕 6년) 진주와 가까운 이곳에 축성했다고 전한다. 남쪽 성문은 원형대로 남아 있으나 성벽 대부분이 허물어져 세 차례 복원했다.

산성을 지나 400m쯤 가파른 길을 오르면 정상에 닿는다. 이곳에서 맞는 풍경은 장쾌하기 이를 데 없다. 창선·삼천포대교가 인상적이다. 세 개의 섬 사이에 놓인 다섯 개의 다리가 물수제비 뜨듯 바다 위를 가르고 있다.

정상에는 왜구의 침입을 전하기 위해 고려시대에 설치한 원형 봉수대가 복원돼 있다. 남해 금산 구정봉에서 올린 봉화를 창선 대방산을 통해 이어받아 사천 용현면과 곤양면으로 전한 봉수대라고 한다.

인근에 사천 바다케이블카 설치공사가 한창이다. 케이블카는 각산에서 초양도까지 2.43㎞를 잇는다. 2015년 12월 착공해 내년 3월 개통예정이다. 케이블카를 타면 발아래 펼쳐진 창선·삼천포대교와 넘실대는 푸른 바다, 죽방렴 등 바다 풍경을 공중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삼천포 동쪽 해안 끝은 남일대해수욕장이다. 신라말 대학자 고운 최치원이 ‘남녘땅 제일의 경치’라고 해 남일대로 불린 명소다. 바다를 향해 멀리 손가락을 가리키는 최치원 동상과 시비 등이 조성돼 있다. 남일대의 명물은 코끼리 바위다. 바닷물을 먹기라도 하듯 코를 물에 담그고 있는 형상이다. 썰물 때 찾아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삼천포대교에서 북으로 방향을 잡으면 선진리성이 반긴다. 이순신 장군은 선진 앞바다에서 거북선을 등장시키며 승리를 거뒀다. 선진리성은 공원으로 정비돼 돌로 쌓은 성의 형태가 잘 남아 있다. 이충무공 사천해전 승첩비가 세워져 있다.

선진리성에서 사천만을 가로지르는 사천대교를 지나면 서포면이다. 이곳에 비토섬이 있다. 토끼가 나는 형상이란다. 비토섬 동쪽 끝에 서면 월등도와 거북섬이 보인다. 그 뒤편에는 토끼섬과 목섬이 있다. 토끼와 자라, 용왕이 등장하는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비토섬의 전설은 원작과 달리 해피엔딩이 아니다. 자라의 등을 타고 육지로 오던 토끼는 월등도 부근에서 바다에 비친 섬을 고향으로 착각하고, 서둘러 뛰어내렸다가 물에 빠져 죽어 토끼섬이 됐다. 토끼를 놓친 자라 또한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섬으로 남았다.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 토끼는 바다를 바라보며 목이 빠지게 남편을 기다리다 바위 끝에서 떨어져 목섬이 됐다고 한다.

연륙교가 놓인 비토섬은 아무 때나 찾을 수 있지만, 이어진 월등도와 토끼섬, 거북섬 등은 썰물 때라야 길이 열린다.

▒ 여행메모
곤명면 은사리에 세종대왕·단종 태실지
해산물·사천냉면·쥐포… 특색있는 먹거리


수도권에서 가면 경부나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통영대전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진주분기점을 지나 남해고속도로 사천나들목으로 나가면 된다. 3번 국도를 따라 사천항공우주박물관, 선진리성, 모충공원, 실안마을, 삼천포대교공원, 남일대해수욕장, 코끼리바위가 차례로 나온다. 비토섬은 곤양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좋다.

곤양면 흥사리 흥곡마을 묵곡천변에 매향비가 있다. 고려 말 왜구와 관료들의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갯벌에 향나무를 묻고 의식을 치렀던 곳이다. 곤명면 은사리에는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실지가 있다. 태실은 왕가 자손의 태를 봉안한 뒤 표석을 세운 곳이다.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려면 삼천포어시장과 선진횟집단지가 좋다. 사천냉면도 유명하다. 전분 함량이 높은 쫄깃한 면을 사용하고 고명으로 육전을 올리는게 특이하다. 쥐치로 포를 뜬 ‘쥐포’도 삼천포 특산물이다.

사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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