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HOME  >  시사  >  출판

[책과 길] 복종하지 않으면 두려움 느끼는 이유는?

입력 2017-12-22 05:10:01


“사람들은 복종하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 때문에 우리를 억압하려는 이들에게 순응한다. 두려움은 이 억압자와 결속해 그들의 위력과 멸시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버린다. 이러한 이유로 극우주의 성향의 통치자들이 특히 사회 변혁의 시기에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과정이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것은 다시 말해 우리 문화가 근본적으로 복종을 권하기 때문이다.”

프롤로그를 제법 길게 인용한 건 이 몇 줄 문장에서 책의 내용을 어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아르노 그륀(1923∼2015)은 독일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다. 인간성을 억압하는 독재와 폭력에 대해 평생 동안 연구했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2001년 존경받는 지식인에게 주어지는 ‘게슈비스터 숄 상’을 받으며 명성을 얻었다.

저자는 흥미롭게도 복종의 출발을 가족에게서 찾는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나 어머니의 제압적인 힘을 통해 하인 근성이 뿌리 깊이 박힌다는 것이다. 부모는 우리를 위해 최고의 것만을 바라는 친절한 존재이기에 그들이 우리에게 휘두르는 힘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회에 나가서도 ‘정상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개인을 억압하고 때때로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유명한 ‘밀그램 실험’ 이론을 통해 보여준다. 밀그램 실험은 ‘권위적인 불법적 지시’에 다수가 항거하지 못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가짜 전기 충격장치로 전압을 올리게 했던 실험을 말한다.

나아가 우리는 국가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도 복종의 시스템 속에 살아간다. 그리하여 태어난 순간부터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복종에 길들여져 살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저자는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한 충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복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며, 이것이 복종의 가장 위험한 점이라고 말한다. 그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나의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행동의 이면에 깔린 동기가 무엇인지, 이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에 나를 맞추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감의 역설을 주장한다. 권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