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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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컷] 소박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집

입력 2017-12-28 20:15:01


남자는 어기찬 환경운동가였다. 1990년대 ‘자연의 친구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설악산 골프장 건립을 저지시켰고 방태산 스키장 건설을 막았다. 광릉숲 출입 예약제를 만들어냈고 북한산을 돌보는 일에도 앞장섰다. 하지만 남자는 2000년대 초반 환경운동의 ‘현장’을 떠났다. “조직을 운영하는 데 소질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10년 넘게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남자는 지난 10월,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환경운동가 고(故) 차준엽씨다. 그는 2013년 충남 논산 대둔산 기슭에 둥지를 틀었다. 폐가를 빌려 자신만의 집을 만들어나갔다. 2년 6개월 동안 물에 갠 흙을 몇 겹씩 손으로 발라가며 토담집을 완성했다.

저 사진은 그가 살았던 토담집의 내부 풍경이다. 자연이 그렇듯 어디를 둘러봐도 직선이나 직각을 찾을 수 없다. 신간 ‘집이 사람이다’는 소박하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집 24곳을 소개한 내용인데, 이 책의 첫 챕터를 장식한 곳이 바로 고인의 토담집이다.

저자는 이 집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토담집 짓기를 통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훨씬 근본적이고 혁명적이다. 환경운동이 제도화하고 경제개발이 녹색성장으로 포장되면서 환경이란 의제는 더욱 모호해졌다. …토담집은 자연이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거처라는 점을 일깨운다. 사람들이 쓰다버린 폐가인 이 집은 차준엽에게 일종의 자연이다.”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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