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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시인 할머니와 손자가 주고받은 정겨운 편지

입력 2017-12-28 20:20:01


할머니와 손자가 주고받은 손 편지를 책으로 묶었다. 편지를 쓴 할머니는 연작시집 ‘사랑굿’으로 유명한 김초혜(74) 시인. 그는 어린 시절 오라버니에게 선물로 받았던 톨스토이의 인생독본(人生讀本) 같은 책을 손자에게 물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시인은 2008년 매일 한 편씩 손자 조재면(17)군에게 주는 편지를 써내려 갔다.

그가 1년간 쓴 편지는 노트 5권 분량이 됐다. 이 편지는 ‘행복이’(2014)란 제목의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할머니는 인생독본 활용법을 이렇게 알려준다. “사랑하는 재면아! 1년만 읽고 꽂아두지 말고 해가 바뀌면 다시 또 읽고, 다시 해가 바뀌면 또 읽으면서 영원한 할머니의 정다운 속삭임이라고 여겨다오.”

할머니의 노트는 중학교 입학 선물로 손자에게 전해졌다. 손자는 이때부터 할머니가 준 편지를 하나씩 읽고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할머니,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손자인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그런지 그 어떤 장애도 두렵지 않습니다.”

조군이 지난해 말까지 3년간 답장으로 쓴 편지에는 소년다운 순수함과 천진함이 느껴진다. “할머니는 제가 용기도 없고 착하기만 하고 생각이 깊은 나머지 활동성이 부족한 게 아닌가 걱정하시지만 …저 아주 단단합니다. 할머니 염려하지 마시라니까욧.” 할머니의 조언은 따르기 쉽지만은 않은 것들이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자기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가장 훌륭한 모습이란다. 다른 사람의 권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이 되면 하는 일에 권태가 오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손자의 답은 솔직하다. “지금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행복이’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공부해야할 시기에 인격 형성에 대한 애기는 허무한 얘기처럼 들리기도 해요.” 하지만 할머니가 손자에게 주는 교훈은 인생 전체를 두고 계속 물어야할 질문을 가르쳐주는 데 있는 것 같다. “하루에 한 번씩 ‘내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하고 자기 성찰을 꾸준히 해 나간다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이런 조언은 성장기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의 편지를 읽노라면 인생의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 자문자답을 하게 된다. 세대를 초월한 두 사람의 대화는 읽는 이에게 순수한 기쁨을 안겨 준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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