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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일본은 무슨 배짱으로 美·中과 전쟁했을까?

입력 2018-01-05 05:05:01
미국이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일본 나가사키. 당시 나가사키에서만 6만∼8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나가사키 원폭투하 엿새 뒤인 1945년 8월 15일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픽사베이




“일본은 위안부 문제 등 전쟁 범죄에 대해 왜 사죄하지 않을까.” “중국이나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배짱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우리가 일본이란 나라를 떠올릴 때 자주 품게 되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는 이런 물음에 제법 속 시원한 답을 주는 책이다. 근대 일본의 대표적 침략전쟁으로 꼽히는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거의 10년마다 벌어진 5개 전쟁의 특징, 전쟁이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 국제질서의 변화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도쿄대 교수인 저자 가토 요코(58)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역사 특강을 묶은 것이다. 복잡한 역사를 구어체로 쉬우면서도 역동적으로 전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먼저 미국을 향해 돌진할 수 있었던 이유. “일본 군부는 1937년 중일전쟁을 치를 때부터 임시군사비특별회계를 설치했다. …일본은 겉으로는 중일전쟁이라고 말하면서 태평양전쟁에 대비해 필사적으로 군수품을 모았다.” 또 미국 진주만을 노리고 훈련을 했다. 전함을 침몰시키기 위해서는 대개 바다 폭탄인 어뢰를 사용해야 하는데 어뢰를 사용할 수 있는 수심은 보통 60m 정도로 간주됐다. 진주만은 수심이 12m에 불과해 미국은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일본은 약 3개월간 수심 12m 미만에서 어뢰를 투하하는 훈련을 집중 실시해 어뢰 27발을 미국 전함에 명중시켰다.

이 책은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저자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일본이 전쟁을 하게 된 과정을 세계사적 흐름에서 객관적으로 조망한다. 일본이 중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된 것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전승국들이 전후 처리를 위해 모였다. 바로 1919년 파리강화회의다.

이 기간 중 조선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나고 일본은 “폭압적으로 식민지 통치를 한다”는 미·영·중의 비판에 직면한다. 여기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 영국 재무부 수석대표로 회의에 참석했던 경제학자 존 케인스다. 그는 미국 윌슨 대통령이 독일에 과도한 전쟁배상금을 요구하는 것에 반대하며 “당신들 미국인은 부러진 갈대”라는 편지를 남기고 회의장을 떠나버린다. 저자는 “당시 미국이 독일에 조금만 더 관대했다면 1929년 세계대공황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세계 자본이 미국에 집중되면서 돈의 흐름이 막혀 대공황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회의에서 고립감을 느낀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차례대로 감행한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가 수백만명이 넘지만 일본은 가해자라는 의식이 강하지 않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전사자 중 상당수가 언제 어디에서 죽었는지 유족에게 알려주지 못했고 일본인은 자신들도 전쟁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 근현대사 전문가답게 관련된 사료를 적확하고 풍부하게 제시한다. 주요 인물의 얼굴 사진, 국력·병력 도표, 점령지 지도, 적절한 요약 등은 친절한 교과서라는 인상을 준다.

일본 침략을 받았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당시 정세 묘사는 그 자체로 서글프고 뼈아프다. “일본은 자멸의 길을 걸었다”는 등 가차 없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지만 “일본은 안전보장을 최우선시해 식민지를 획득했다”고 해 일본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듯한 표현도 있다. 우리로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일본에 대한 역사서이지만 세계사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일본과 뗄 수 없는 굴곡진 근현대사를 살아온 우리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를 넓혀줄 양서로 보인다. 일본의 권위 있는 학술상인 제9회 고바야시히데오상을 받았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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