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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꿈틀대는 물안개와 붉은 빛 데칼코마니… 대전의 ‘육지 속 바다’ 대청호 겨울 여행

입력 2018-01-25 05:05:01
이른 아침 대전 동구 추동 ‘바람의 언덕’에서 본 대청호.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는 물안개와 떠오르는 해의 붉은 빛으로 치장한 거울 같은 수면이 황홀한 데칼코마니를 펼쳐내고 있다. 바람의 언덕엔 벤치가 동쪽을 향해 있어 일출시간을 맞춰 가면 편하게 해돋이를 즐길 수 있다.
 
‘슬픈 연가’ 촬영지에서 사진 찍는 여행객
 
동구 직동 찬샘마을 뒤편 찬샘정


겨울 대청호는 명징하다. 도시의 온갖 소음을 삼킨 호수 옆 ‘대청호 오백리길’을 걸으면 마음이 씻어지고 속까지 시원하다. 1980년 담수를 시작할 당시와 달리 이젠 제법 웅숭깊은 풍경을 펼쳐낸다. 어른 키를 웃자란 물억새도 만나고, 호수에 반쯤 잠긴 버드나무 군락지도 지난다.

1975년 착공해 5년 만에 완공된 대청댐은 대청호라는 거대한 인공호수를 탄생시켰다. ‘육지 속의 바다’다. 단순하게 식수만 제공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즐길거리와 함께 먹거리를 제공한다. 그 호수 옆에 길이 있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대전시와 충북 청주·옥천·보은 등 대청호에 인접한 여러 지역을 잇고 있다. 전체 길이는 무려 220㎞에 달한다. 전 구간을 다 돌기에는 벅차다. 적절한 구간을 선택해 걷는 게 좋다. 걷기 부담스러우면 호반길 따라 드라이브를 즐겨도 그만이다.

3구간인 호반열녀길(냉천버스종점∼마산동 삼거리 12㎞)은 교육여행코스로 제격이다. 열녀문을 하사받은 쌍청당 송유(1389∼1446) 어머니의 재실인 관동묘려와 서울에서 영·호남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에 여관이었던 미륵원터도 만날 수 있다. 미륵원은 길손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행려자에 대한 구호활동을 벌여 오늘날의 사회복지기관 역할도 했다고 한다.

4구간은 ‘호반낭만길’이다. 마산동 삼거리에서 신상동 오리골까지 10㎞ 정도 이어진다. 소요시간은 4시간 남짓. 피오르 해안과 리아스식 해안 같은 느낌이 번갈아 섞여 있어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다. 이 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는 갈대밭이다. 갈대와 물억새가 섞여 자라고 있다. 2005년 방영된 TV 드라마 ‘슬픈 연가’ 촬영지로 이름난 곳이다. 도로에 드라마 촬영지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슬픈연가 촬영지 1.3㎞’. 표지판이 안내하는 대로 대청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솔길을 걷는다. 버드나무 군락을 지나면 좌우로 억새가 이어진다. 15분 정도 아기자기하게 꼬불거리는 예쁜 숲길을 걸으니 슬픈연가 촬영지가 나온다. 세트(오두막)는 철거되고 이곳이 드라마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푯말만 우두커니 서 있다. 정면에 작은 섬이 하나 떠 있다. 흰 모래가 백사장을 연상케 한다. 물이 찼다 빠졌다 반복되면서 만들어진 층층의 곡선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 길에 ‘바람의 언덕’이 있다. 바람의 언덕은 공식 명칭이 아니다. 대청호 이정표엔 전망 좋은 곳이라고 표시돼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대청호의 바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라 해 이렇게 부른다.

추동습지보호구역에서 갈대와 억새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이른 새벽 바람의 언덕에 해가 뜨면 어둠 속에 가려졌던 대청호가 위용을 드러낸다. 푸르던 대청호는 해를 머금고 붉은 빛으로 치장한다. 아기 새가 그 아름다움을 샘내듯 대청호 위를 스쳐간다. 안개가 끝없이 스며나온다. 수면 위를 미끄러져 호수 중앙으로 이동한다. 고요한 수면이 부드러우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살아 꿈틀댄다.

햇살을 비스듬히 받은 바람의 언덕은 대청호 아래에도 있다. 바람의 언덕과 수면에 비친 바람의 언덕이 거울을 본 것처럼 대칭을 이룬다. 잔잔한 바람이 불면 물결이 아기 새와 놀아준다.

이곳에서 대청댐 가는 길 중간에 대전 동구 직동 찬샘마을이 있다. 대청댐이 조성되기 전까진 산중에 꼭꼭 숨어있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그 마을이 지금은 농촌체험관광마을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직동의 옛 지명은 핏골이다. 삼국시대 고구려에 맞서기 위해 백제와 신라가 의기투합한 나제동맹이 깨진 뒤 두 나라의 갈등관계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지속되는 전쟁 속에서 병사들이 흘린 피가 산골짜기를 가득 메웠다고 전해진다.

핏골이란 지명이 마을 이미지를 해친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은 이름을 새로 지었다. 찬샘마을이다. 예부터 이 마을 우물이 아무리 가물어도 찬물이 마르지 않고 항상 차 있었다고 한다.

찬샘마을 뒤편에 찬샘정이 있다. 정자에 앉아 바라보는 대청호 풍광도 좋지만 찬샘정에서 곧바로 오를 수 있는 등산로를 따라 노고산에 오르면 더 큰 감동을 만끽할 수 있다. 조금 더 가면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전투를 가늠할 수 있는 노고산성도 볼 수 있다.

금강로하스 대청공원은 강변을 따라 나무데크가 조성돼 있어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다. 대청공원 하류로 1㎞ 정도 떨어진 곳에 유명한 사진 포인트가 있다. 물에 뿌리를 담근 나무들이 거울 같은 강물 위에 제 모습을 비추며 데칼코마니를 보여준다. 이른 아침에 찾는 게 좋다. 몽실몽실 피어난 물안개가 버드나무를 감싸는 모습이 몽환적이다.

여행메모

내비 의존 말고 시골길 드라이브
메기·빠가사리 끓인 매운탕 별미


수도권에서 대청호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나들목에서 빠져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 두 번째 사거리에서도 좌회전한 뒤 비룡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곧장 가면 된다. 금강로하스 대청공원으로 바로 가려면 신탄진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빠르다. 좌회전해 신탄진 사거리까지 가서 대청호·대전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대청호수길로 들어서 곧장 가면 된다. 대전역에서 추동마을까지는 약 10㎞, 승용차로 20여분 거리다. 대전 동구 추동마을에서 대덕구 대청댐까지 드라이브를 계획한다면 빠른 길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지 말고 한적한 시골길을 천천히 달리는 게 좋다.

대전에는 특급호텔부터 모텔급까지의 숙소들이 다양하다. 대청호반길 곳곳에는 이름난 맛집들이 즐비하다. 대청호에서 잡아올린 물고기들로 매운탕·조림 등을 내는 집들이다. 허름해 보이지만 평균 이상의 맛을 자랑한다. 관동묘려 입구 냉천골할매집(042-273-4630)이 유명하다. 살아있는 자연산 메기와 '빠가사리'로 끓여내는 매운탕이 별미다. 레스토랑 '더 리스'(042-283-9922)는 낭만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브라질식 바비큐 전문점으로 점심에는 바비큐에 샐러드바를 뷔페식으로, 저녁에는 바비큐까지 무제한 제공해준다.

대전=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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