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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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윙크, 만화경

입력 2018-01-30 17:40:01


교토의 만화경 박물관에 갔다. 거울의 반사를 이용해 갖가지 색과 패턴을 보여주는, 말 그대로 만화(萬華·온갖 화려한)를 부르는 도구. 다양한 형태의 만화경 중에 긴 원통형 하나를 집어 들고 입구의 작은 구멍에 눈을 맞췄다. 누구나 만화경에 한쪽 눈을 들이밀면 몇 초라도 고요해진다. 다른 쪽 눈은 감은 채로, 윙크를 부추기는 이 구멍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오로지 1인용일 수밖에 없다. 만화경 속 세계는 극장 스크린이나 TV처럼 함께 보는 게 아니라 오롯이 혼자 누리는 세계다. 내가 보던 만화경을 다른 이에게 권할 때 할 수 있는 말은 “봐봐” 정도인데, 다른 이가 본 것이 내가 본 것과 일치하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동시에 본 것이 아니므로 시차가 발생한다.

나는 만화경을 오른쪽으로 조금씩 돌리면서 여러 패턴을 보았다. 현미경으로 본 양파 단면도 떠올리고, 인체의 신비도 떠올리고, 가장 깊게 떠올린 건 계절에 대해서였다.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 또 봄, 만화경 안의 세계는 그렇게 어떤 시간이 피고 지는 것과 닮아 있었다. 이 안에 시간이 있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만화경을 왼쪽으로 되감고 싶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만화경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1㎝씩만 움직이기를 반복했는데, 방금 본 패턴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만화경에 되감기 기능은 없다는 듯 새로운 패턴 속에 놓이곤 했다. 만화경 속의 패턴이 복잡하고 화려해서 내가 같은 패턴을 두 번째 보는 것인지, 아니면 닮은 듯 다른 새로운 패턴을 보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았다. 좌우로 움직이는 속도를 늦춰보면 조금 나을까 싶어서 나는 팔과 어깨와 목의 모든 근육을 이용해 아주 미세한 각도로 만화경을 조절해 보려고 했다.

그러는 동안 느낀 건 꽤 시각적이라고 생각했던 만화경이 실은 촉각에 더 기대고 있다는 거였다. 박물관 안의 모두가 긴 통을 빙글빙글 돌리거나 버튼을 누르거나 단추를 움직이면서 몰입해 있었다. 만화경 안의 세계도 시간이라면, 우리는 각자의 손으로 시간을 움직이는 셈이었다.

윤고은(소설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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