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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핀란드 유머의 제왕’ 한국 여행기

입력 2018-02-09 05:05:01


한국에 온 괴짜 노인 그럼프/투오마스 퀴뢰 지음/따루 살미넨 옮김/세종서적/212쪽/1만2800원

핀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할아버지 그럼프가 한국에 상륙했다.

인구 500만명의 핀란드에서 50만부 이상 판매된 소설 ‘그럼프’ 시리즈 작가 투오마스 퀴뢰(44)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배경으로 한 소설 ‘한국에 온 괴짜 노인 그럼프’를 냈다. 그럼프는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는 한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세상사를 풍자한다. 여행기 형식의 풍자소설이다.

1930년대에 태어난 그럼프는 서울 한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는 손녀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손녀와 함께 여기저기를 관광하고 동계올림픽 개최 장소를 구경한다. ‘핀란드 유머의 제왕’으로 통하는 작가답게 소설 전체에 유머가 가득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비데 화장실을 사용하는 장면을 보자. 볼일을 본 그는 첫 번째 버튼을 부른다. 변기에서 물이 마구 튀면서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만다. 다음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나온다. 그는 “볼일을 보면서 요란한 음악 소리를 듣고 싶은 이유가 뭔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리듬 있게 볼일 보라는 것인가”라고 자문한다. 용변 볼 때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설치한 에티켓 벨에 대한 그의 단상이다.

남산 타워에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를 권하자 그럼프는 거부한다. “기계의 힘으로 올라가서 중력으로 내려오지는 않는다”면서. 꼬장꼬장한 그럼프 할아버지의 행보가 매력적이다.

연륜이 묻어나는 인생 조언도 번뜩인다. 예를 들면 “평범하게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특별함을 원하면 또 다른 특별함만 갈망하게 된다.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가져야 한다”고. 김연아 선수를 백조에 비유하며 아내와 김 선수의 경기를 봤던 장면을 회상하는 장면도 있다.

그럼프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 지도자와 미국 대통령을 각각 ‘뚱뚱한 소년’과 ‘엉덩이 큰 양키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러시아 등 강대국의 침략을 받았던 핀란드 역사를 상기한다. 전작으로 핀란드에서 세대 공감을 이끌어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선 동계올림픽을 소재로 핀란드인과 한국인의 역사 공감을 시도한다.

10대 때 태권도를 배웠던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약 2년간 한국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여행지를 손수 답사했다. 24개 각 장마다 그럼프 복장을 한 노인 사진이 삽입돼 현장감을 준다.

강훈 세종서적 주간은 “스키를 타고 이웃을 만나러 다니던 나라에서 태어난 작가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 한국을 무대로 기발한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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