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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인류는 새똥 차지하려고 전쟁도 벌였다

입력 2018-02-09 05:05:01
일본 규슈 지역 구마모토현의 계단식 논. ‘문명과 식량’은 식량 위기와 그 위기를 극복해온 인류사를 담고 있다. 픽사베이




문명과 식량/루스 디프리스 지음, 정서진 옮김, 눌와, 364쪽, 1만6000원

‘새똥을 차지하기 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전쟁까지 벌였다?’ 잘 믿어지지 않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바닷새 배설물 퇴적층인 구아노(guano)는 거름으로 유용했다. 미국은 1856년 자국민이 발견한 모든 구아노가 국가에 귀속된다는 희한한 법안을 통과시켰고, 스페인은 1863년 구아노 매장층을 갖기 위해 페루 칠레 에콰도르 볼리비아 4개국 동맹군과 전쟁을 불사했다.

신간 ‘문명과 식량’은 인류가 보다 많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투쟁해온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구아노 전쟁은 이 투쟁의 한 예다. 19세기 유럽과 아메리카 각국은 구아노를 갖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구아노 같은 비료를 땅에 충분히 뿌려야만 농작물이 잘 자라 풍부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환경공학자인 저자 루스 디프리스는 이 책에서 인류가 채집하고 농사짓고 교역해온 식량을 중심으로 문명을 조망한다. 그는 서문에서 “우리 종이 스스로를 부양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의 긴 여정을 멀리서 바라보는 가운데 현시대를 살펴보고자 한다”고 밝힌다. 식량을 문명의 원동력이라고 보고 문명을 ‘성장의 방향으로만 돌아가는 톱니바퀴’라고 틀 짓는다.

식량 생산을 위해 인류가 기울인 노력이 톱니바퀴처럼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바퀴의 회전을 방해하는 식량 위기가 도끼처럼 간혹 찾아왔지만 인류는 위기를 계속 극복해 성장이 그야말로 절정에 이른 시대에 살게 됐다고 한다.

무미건조한 역사서일 것 같지만 이야기는 상당히 부드럽고 친근하게 전개된다. “과학자는 울면 안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브라질 아마존의 열대우림 파괴 현장에서 느낀 슬픔을 전하는 서두다.

특히 모든 위기와 그 극복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감자 얘기를 살펴보자. 콜럼버스가 1492년 신대륙에 발을 디딘 뒤 신대륙의 감자가 구대륙으로 넘어왔다. 감자는 1700∼1900년 가난한 유럽인들의 주식이 됐다. 감자가 주식인 마을에서 자란 이들은 1세기 전 선조보다 키가 1.5㎝나 더 컸다. 하지만 1845년 감자역병이 돌았고 감자를 주식으로 삼던 아일랜드에서는 무려 1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체 인구의 8분이 1이었다. 그러나 대기근 후 역병에 내성이 있는 교배종 감자와 살균제가 도입되면서 다시 감자는 널리 재배됐고 주식의 자리를 지켰다. 저자는 “감자와 관련된 아일랜드 변화상은 성장-위기-전환점이라는 주기를 반복해온 인류의 여정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시각으로 문명의 발전 과정을 채집 시기부터 더듬어 간다.

식량 재배를 순환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흥미롭다. 흑사병으로 인구가 3분의 1로 급감한 뒤 유럽에서는 삼포식·이포식 농업이 성행했다. 농지를 3년이나 2년 단위로 쉬게 하는 것이다. 농지를 쉬게 하면 풀이 자라고 풀을 먹는 가축은 농지에다 똥을 눈다. 이 배설물은 땅이 농작물에 빼앗긴 질소를 땅에 되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땅은 다시 비옥해지고 생산성을 회복한다. 과거 동서양 분뇨 수거인들 역시 농부에게 거름을 제공해 양분을 순환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이렇게 인류가 지구에서 더 많은 식량을 얻기 위해 기울인 온갖 노력들을 파헤친다. 고대 식물 육종가들, 화학비료와 DDT 발명자…. 지구와 자연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인류의 과거를 통해 불확실한 인류의 미래에 대해 가늠해볼 수 있는 수작이다. 전 세계 식량에 대한 수요가 지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추적해온 저자는 ‘천재들의 상’으로 불리는 맥아더 지니어스상을 수상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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