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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트럼프는 걸어 다니는 정신질환 백화점”

입력 2018-03-02 00:05:01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는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정신세계를 깊숙이 파고든 문제작이다. 책을 엮은 밴디 리 예일대 교수는 트럼프를 거론하며 “그토록 많은 결함을 지닌 한 개인이 그렇게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우리가 처한 건강과 안녕의 전반적인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적었다. AP뉴시스




이 책에는 이 남자의 정신 세계가 얼마나 희한한지 분석한 내용이 실려 있다. 주인공은 막말과 기행의 아이콘인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가 독특한 인물이라는 건 천지간에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될 것이다. 기함할 정도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 세상의 방향타를 쥐고 있음을 실감하게 될 테니까.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는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돼 화제를 모은 문제작이다.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 트럼프와 과거 인연을 맺은 인물 등 27명이 바통을 주고받으며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들려준다. 이들이 쓴 글을 깁고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한 인물은 한국계 미국인인 밴디 리 예일대 교수다.

미국에는 ‘골드워터 규칙’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정신건강 전문가가 직접 조사하지 않은 공인의 정신 상태를 짐작해 공표해선 안 된다는 윤리강령이다. 이 책에 참여한 정신과 의사는 전부 이 강령을 어긴 셈인데, 이들이 비난을 각오하고 집필에 참여한 건 트럼프의 정신 상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가 비밀 유지의 신뢰를 깨고 동의 없이 개입해도 되는 것은 매우 위급한 상황일 때뿐이다. 즉, 위급한 상황에서는 골드워터 규칙을 어겨야 한다. 우리는 지금이 그런 위급한 상황이라고 확신한다.”

자, 그렇다면 트럼프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많은 인물인지 살펴보자. 전문가들이 내놓는 진단명은 한두 개가 아니다. 편집증 나르시시즘 망상장애 조증 공감장애….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정신질환 백화점이 트럼프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인 필립 짐바르도의 분석은 이렇다. 트럼프는 당면한 현재에만 몰두하는 ‘극단적인 현재 쾌락주의자’다.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다. 어린이가 그렇듯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곧바로 행동에 옮긴다. 실제로 트럼프는 한 전기 작가에게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똑같다”고 말한 바 있다.

짐바르도 교수는 한 발짝 더 나아가 트럼프에게서 치매나 알츠하이머 같은 신경질환의 징후까지 포착해낸다. “1980년대와 1990년대, 2000년대 초, 그리고 최근에 트럼프가 한 인터뷰 동영상들을 비교해보다가 두드러지게 뚜렷한 차이점을 발견했다. 중요한 단어들을 사용하는 빈도가 현저히 감소했고, 비문법적으로 연결된 문장을 쓰는 빈도가 증가했는데, 이는 생각의 흐름을 놓치거나 기억을 놓친 것을 드러내는 신호일 수 있다.”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심리학자 마이클 탠지는 트럼프가 중앙정보부(CIA) 연설에서 두서없이 쏟아낸 말들을 통해 그의 망상장애가 심각한다는 평가를 내린다. 임상심리학자 존 가트너는 “트럼프는 사악한 동시에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보스턴정신분석연구소에서 일하는 랜스 도즈는 트럼프의 정신 상태를 ‘소시오패시(sociopathy)’라고 규정했다. 소시오패시는 무엇에도 공감하지 못하면서 죄의식까지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

책에는 트럼프의 위태로운 정신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지인들의 증언도 등장한다. 1980년대에 트럼프와 ‘거래의 기술’이라는 책을 함께 쓴 토니 슈워츠의 글이 대표적이다.

“트럼프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가 살아남으려면 세상과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진위에 의혹이 제기되면 그는 본능적으로 더욱더 강하게 밀어붙인다. 자신이 방금 말한 것이 명백히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날 때도 말이다.”

많은 사람이 차례로 등장해 중구난방 가차 없는 비판을 쏟아내니 책에 담긴 내용 중엔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글의 수준도 들쑥날쑥한 편이다. 하지만 세계 최강대국의 지도자가 어떤 인물인지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책을 읽는 내내 밑줄을 긋게 된다.

말미에는 트럼프를 대통령 자리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트럼프를 몰아낼 수 있는 법적인 지렛대는 수정헌법 25조 4절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부통령과 장관의 과반수가 의기투합해 대통령의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서면을 의회에 보내면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축출’하는 게 가능해지는 셈이다.

물론 이런 형태의 ‘쿠데타’가 일어날 확률은 미미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책에 담긴 내용처럼 트럼프가 통제불능의 지도자라면 모든 방법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을.

책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건 정신의학자인 나네트 가트렐과 디 모스바처가 공저한 글이다. 이들은 “전문가들의 경고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면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상은 새벽 3시의 핵 트윗과 함께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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