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회는 더 이상 세속화된 문화의 피해자가 아닙니다. 교회 스스로 세속화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됐고, 불신앙을 기르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어요. 믿음을 아주 하찮게 여기는 현상이 팽배합니다.”
9일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호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는 미국 기독교가 처한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했다. 호튼 교수는 이날 경기도 안양시 열린교회 본당에서 열린 세미나에 앞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위기에 처한 기독교의 활로에 대한 생각을 들려줬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자로 ‘그리스도가 사라진’ 이 시대의 기독교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되찾아 ‘그리스도로 꽉 채워진 기독교’로 회복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의 복음주의는 세대주의 종말운동,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기독교 우파 정치세력 등과 결탁하면서 본래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누군가 나에게 ‘복음주의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한다”며 “미국에선 복음주의의 경계선이 넓어지고 흐려지면서 복음주의를 다시 정의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사회학자 크리스천 스미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미국 청년세대가 ‘도덕적이고 치료 목적의 이신주의(deism)’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종교는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며 죄는 일종의 역기능으로, 구원은 회복 정도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긴 했지만 마치 시계태엽을 감아두면 저절로 굴러가듯 더 이상 하나님의 관여는 없다고 생각한다.
호튼 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정에서 부모가 왜 믿고 무얼 믿는지 잘 알고,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해야 한다”며 “교회에서도 세대 차이가 교회를 지배하도록 둘 게 아니라 역행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호튼 교수는 이를 위해 드라마(drama) 교리(doctrine) 송영(doxology) 제자됨(discipleship)이라는 4D의 융합적 접근을 강조한다. 그는 “‘교리’는 건조하고 추상적이며 지루하다는 편견을 갖는데, 이는 성경의 드라마와 결부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성경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동사와 부사, 즉 생생한 이야기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행동과 계시를 담은 명사가 곧 교리”라고 말했다. 그는 “교리를 드라마와 연결해 생각할 때 하나님의 드라마에 참여할 수 있고 그때 송영을 부르고, 제자된 삶을 사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만든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것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드라마에 그분이 원하는 캐릭터로 참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방문은 2010년 시작된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와의 인연에서 출발했다. 줄리어스 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의 소개로 처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비슷한 개혁주의 신학의 틀에서 교류해 왔다. 그러던 중 호튼 교수가 제작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과 소그룹용 온·오프라인 교재를 열린교회 청년부에서 시범적으로 사용해 봤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담아 한국어 교재 ‘기독교 신앙의 핵심 101’ 학생용과 인도자용을 펴냈다. 김 목사는 “4D가 호튼 교수의 독창적인 발명품은 아니지만 미국의 많은 신학자들이 반성하면서 교리는 교리대로, 제자훈련은 제자훈련대로 제각각하는 것을 아우르고 결합한다는 점에서 우리도 배울 점이 많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