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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어제와 오늘이 만나는 곳… ‘산복도로’ 제대로 즐기기

입력 2018-04-12 05:05:03
부산 중구 영주동 ‘역사의 디오라마’에서 바라본 산복도로 풍경. 어려웠던 삶을 살았던 시절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과 구불구불 엉겨있는 골목의 불빛이 정감있게 다가온다.
 
산복도로에 설치된 유치환우체통.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얽히고설킨 산동네 걷다 보면 발길 닿는 곳이 모두 전망대
오래된 아파트와 묘지 위 주택 바다로 향하는 ‘168계단’ 등 시간이 쌓인 진짜 부산을 만난다


하루를 밝혔던 해가 어둠에 자리를 내주면 산 중턱부터 서서히 반딧불처럼 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마천루 같은 높은 빌딩이나 화려한 조명과는 거리가 멀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삶이 투영된 불빛이 향연을 펼친다. 부산 산복도로에서 만나는 풍경이다.

부산이라고 하면 해운대나 광안리, 송도 등 바다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부산(釜山)은 명칭에도 ‘산’을 붙인 지역이다. 부산이라는 지명은 좌천동의 증산(甑山)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1643년 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건너간 신유의 ‘해사록’에 실려 있는 ‘등부산시(登釜山詩)’에 ‘산 모양이 도톰하여 가마와 같고 성문이 바다에 임하여’라는 구절이 있다. 또 변박의 왜관 그림 등에 증산이 ‘부산고기(釜山古基)’라고 기록돼 있다.

산복(山腹)은 산허리를 뜻한다. 산복도로는 경사지를 개발하면서 산 중턱에 자리한 도로다. 동서남북으로 큰 길이 16㎞ 남짓이지만 구석구석 얽히고설킨 골목들을 더하면 30㎞를 훌쩍 넘는다. 그곳엔 부산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부산은 산이 많고 평지가 적어 땅이 부족했다. 일제강점기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산으로 올라갔다. 무허가 판자촌이 하나둘 들어섰다. 6·25전쟁 때 피란민이 모여들었다. 비좁은 산비탈이 움막이나 판잣집으로 뒤덮였다. 물통을 이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물을 길었고, 공동 화장실을 사용했다. 힘겨운 시절 팍팍한 삶이지만 피란민에게 안식처이자 희망의 터전이었다.

산동네에 길이 필요했다. 산동네를 연결하는 산복도로가 1964년 10월 처음 열렸다. 중구 대청동 메리놀병원 앞에서 동구 초량동 입구까지 1820m 구간을 잇는 망양로(望洋路)다. 이후 구봉산과 천마산 등 부산 곳곳에 만들어졌다. 이 산복도로가 최근 재생 사업을 통해 부산의 애틋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산비탈에 숨은 이야기가 펼쳐지고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부산의 보석 같은 경치를 보여준다.

망양로에 들어서면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발길 멈추는 곳이 모두 전망대다. 산복도로 집들은 지붕에 자동차를 이고 산다. 경사가 너무 심해 차를 댈 수 없어 옥상에 주차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길에 ‘유치환우체통’이 있다. 부산과 인연이 깊은 시인 유치환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편지를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되는 느린 우체통이다. 빨간 우체통이 파란 바다와 대조를 이룬다.

유치환우체통에서 민주공원 방향으로 가면 ‘이바구공작소’가 나온다. 이바구는 ‘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 풍경만으로 알기 힘든 산복도로의 속 이야기를 만난다. 바로 옆 ‘168계단’이 바다를 향해 내려간다. 40도에 육박하는 경사를 이루며 산복도로 사람들을 부산항으로 이어주는 삶의 길이었다. 옛날 숨을 고르며 오르내렸을 가파른 계단에 2016년부터 무료 모노레일이 함께 오르내린다. 1초에 1m의 속도로 움직인다.

계단 끝에는 5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아주 오래된 아파트가 아찔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문화아파트다. 엘리베이터를 한 번 더 타고 산 위로 오르면 좌천아파트가 낡은 모습으로 서 있다. 좌천아파트 뒤 숲 사이에 놓인 계단을 오르면 증산전망대가 우뚝하다. 전망대 오른쪽으로 영도와 중앙공원의 충혼탑, 용두산의 부산타워와 부산의 원도심이 모두 보인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산복도로의 가로등 불빛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중구 영주동 ‘역사의 디오라마’에서 보면 어려웠던 삶을 살았던 시절의 불빛이 정감있게 반짝인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과 구불구불 엉겨있는 골목이 아름다운 빛으로 다가선다.

발밑에 1968년 지어진 최초의 시영아파트인 영주아파트가 자리한다. 아파트를 지을 당시 골조를 만들고 화장실과 주방 위치만 정해줬다. 집의 구조나 방의 크기를 입주민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집집마다 구조가 다르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시원한 풍광도 내려다볼 수 있다. 부산항대교와 빌딩 사이로 펼쳐지는 화려한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크레인과 끝없이 쌓여 있는 컨테이너가 역동적인 부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산역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산복도로를 여행하는데 ‘부산여행특공대’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산복도로와 원도심을 부산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스토리텔링으로 보여주는 여행사이다. 부산역에서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출발한다. 예약자가 한 명뿐이라도 해설사와 함께 의미있는 스토리텔링여행을 즐길 수 있다. 산복도로의 야경이 궁금하다면 부산역에서 매일 저녁 7시에 출발하는 야경투어도 추천한다. 부산여행특공대 홈페이지(www.busanbustour.co.kr)에서 예약할 수 있다.

산복도로 주민의 삶을 보여주는 또 한 곳이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장례를 치른 뒤 화장해 유골을 묻은 곳이다. 광복 후 일본인은 떠났지만 묘는 그대로 남았다. 6·25전쟁이 발발한 뒤 부산으로 찾아든 피란민들은 집 지을 자리와 자재가 필요했다. 묘지 위에 집을 짓고, 묘비를 주춧돌로 활용했다. 죽은 자의 안식처가 산 자의 보금자리로 변했다. 지금도 묘 위에 지어진 집이 그대로 남아 있고 마을에 담장으로 사용된 묘비가 가로로 누워 있다.

부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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