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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닮은 섬… 물안개 피면 선경이 따로 없네

입력 2018-05-03 05:05:02
전북 임실군 운암면 국사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옥정호의 붕어섬. 운무가 걷히면서 푸른 호수 속에 유유자적 헤엄치는 붕어를 닮은 섬이 모습을 드러내며 황홀경을 자아내고 있다.
 
진메마을과 천담마을 사이 섬진강에 신록의 반영이 데칼코마니를 빚어내고 있다.
 
김용택 시인이 자신이 태어난 한옥 ‘회문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구담마을 느티나무 언덕 아래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운암대교 인근 옥정호 가운데 자리잡은 자라섬 오른쪽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의 팔공산 자락 옥녀봉 아래 데미샘에서 발원해 전북 임실·순창·남원, 전남 곡성·구례, 경남 하동, 전남 광양을 지나 광양만으로 흘러간다. 모래내, 모래가람, 다사강, 두치강으로 불렸다. 고려 우왕 11년(1385년) 하구로 침입하던 왜구가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 울음소리에 놀라 피해 갔다고 한다.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 자를 붙인 연유다.

섬진강은 많은 사람들에게 ‘누이 같은 강’ ‘봄소식을 전하는 강’으로도 불린다. 마을 따라 굽이굽이 흐르며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풍광과 명소, 이야깃거리를 풀어놓는다.

총 길이 212.3㎞의 물길은 진안을 지나 임실에서 섬진강댐을 만나 거대한 호수를 이룬다. 임실군 강진면 용수리와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의 섬진강 상류에 위치한 댐은 1961년 8월에 착공해 1965년 12월에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 댐이다. 주곡인 쌀 생산을 위해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려고 건설한 저수량 4억2000만t의 댐으로 임실·정읍시의 5개 면 28개 리가 수몰됐다. 임실군민 2000가구 1만5000여명이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등져야 했다.

수몰민들은 전북 부안의 계화간척지와 경기도 반원 폐염전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계화간척지는 12년이 지난 1977년 말에야 준공됐고 폐염전은 농사에 적합하지 않았다. 수몰민 대부분이 정착하지 못하고 귀향했다. 2003년 섬진강댐 정상화 사업으로 또 이주가 시작됐다.

수몰민의 삶과 애환은 이전에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구댐이 조성됐다. 댐 옆 큰 암벽에 ‘운암대제’라는 한자가 커다랗게 박혀 있다. 갈수기 물이 많이 빠지면 댐 속에서 수몰된 구댐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이 쓴 ‘운암대제’란 기념비와 함께 서 있는 이 아치형 댐은 1929년 섬진강 물의 일부를 동진강으로 돌려 식민지 수탈의 핵심이던 호남평야에 안정적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됐다.

섬진강댐의 물은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까지 이어진 도수터널을 타고 동진강으로 흘러든다. 두 곳의 낙차를 이용한 남한 첫 수력발전소인 운암발전소는 1931년에 가동을 시작했다. 1945년엔 섬진강 물을 끌어오는 또 다른 도수터널이 뚫려 정읍시 칠보면으로 새 물길을 냈다. 6.2㎞의 도수터널 끝 칠보면 시산리에 섬진강수력발전소가 있다. 섬진강물은 정읍·김제·부안의 농업용수로, 정읍의 생활용수로 사용되는 수십만 명을 살리는 생명수 역할을 하고 있다.

‘아름다움의 역설’. 수몰민들의 아픔을 지닌 섬진강댐으로 생긴 옥정호(玉井湖)는 사계절 절경을 내놓는다. 봄에는 벚꽃이, 여름엔 신록이, 가을엔 단풍이, 겨울엔 하얀눈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놓는다.

국사봉 전망대에 서면 발아래로 펼쳐진 푸른 호수 속에 붕어를 닮은 작은 섬 하나가 떠 있다. 올 들어 수위가 많이 높아져 화려한 지느러미를 펼치고 유유자적 헤엄치는 듯한 붕어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여기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선경이 따로 없다. 굴곡이 이어지는 리아스식 호수변에는 도로가 보일 듯 말 듯 연결된다. 옥정호에서 가장 유명한 붕어섬의 원래 이름은 외앗날이다.

호수변 도로를 지나는 여정이 하나의 여행코스다. 옥정호를 삶의 터로 삼고 있는 운암리와 마암리를 잇는 749번 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선정됐다. ‘옥정호 물안개길 마실길’은 들쭉날쭉한 강변길을 따라 아름다운 옥정호를 보여준다. 국사봉을 출발해 요산공원∼입석리∼어리동∼구암산장을 거쳐 국사봉으로 돌아오는 6.5㎞ 구간은 호반의 고즈넉한 풍경을 선사한다. 요산공원에는 요즘 노란 갓꽃이 활짝 피어 장관을 연출한다. 이곳에서 오는 4일부터 3일간 ‘제2회 옥정호 꽃걸음 빛바람 축제’가 개최된다.

운암대교 인근에 자라섬이 있다. 물이 조금 빠지면 자라를 빼닮았다고 한다. 빽빽한 숲으로 가득했던 섬은 일부 키 큰 소나무로 듬성듬성하다. 꽃섬으로 가꾸기 위해 잡목을 쳐내며 간벌을 했기 때문이다.

댐을 지난 섬진강은 몸집이 크게 작아져 덕치면에 닿는다. 이곳에 진메마을이 있다. 마을 앞에 긴 산이 있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진뫼’ ‘질메’ ‘장산마을’로도 불린다.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70) 시인의 고향이다.

시인은 하루도 섬진강을 보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섬진강과 함께 살아왔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가 펴낸 ‘21인신작시집’에 연작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 덕치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2008년까지 38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마을 입구 아름드리 정자나무를 지나 시인이 태어난 집에 닿는다. 자그마한 한옥에 ‘글이 돌아온다’는 뜻의 옥호 회문재(回文齋)가 걸려 있다.

‘시인의 길’로 불리는 진메마을에서 천담마을까지 5㎞는 가장 아름다운 섬진강길에 속한다. 강이라기보다 개울에 가까운 물줄기가 길동무를 하는 이 길은 섬진강 자전거길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천담마을에 닿으면 지난해 11월 개관한 문화복지 거점공간이자 도·농간 교류의 장인 강변사리센터가 있다. 센터 내에 야영장이 깔끔하다.

약 3㎞ 하류로 가면 이광모 감독의 1998년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인 구담(龜潭)마을에 이른다. 섬진강을 따라 구릉과 비탈에 가옥이 들어선 마을 앞 섬진강에 자라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 구담이라 했고, 아홉 개의 소(潭)가 있어 그렇다는 설도 있다. 뿌리가 드러난 느티나무 언덕 앞에는 김용택 시인의 시비 ‘강 같은 세월’이 세워져 있다. 언덕에서 신록의 아름다움 사이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경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언덕에서 돌계단을 따라 강가로 내려서면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산줄기 사이를 굽이치며 흘러온 강물이 빚은 요강바위 등 기기묘묘한 바위가 그득한 순창 내룡마을의 장군목으로 이어진다.

여행메모

필봉문화촌 취락원에서 색다른 한옥스테이
치즈·다슬기·민물고기매운탕… 먹거리 푸짐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에서 빠져 1번 국도를 따라 가다 17번 국도로 갈아타고 남원으로 향한다. 이후 운암대교 직전 새터교차로에서 빠진다. 운암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면 국사봉전망대에 닿는다. 진메마을은 17번 국도로 더 가서 장암교차로를 이용하면 된다.

특색있는 하룻밤을 보내려면 한옥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필봉문화촌(063-643-1902) 취락원에서 한옥스테이를 해도 좋다.

임실은 한국 치즈의 발상지다. 치즈를 활용한 먹거리가 많다. 스트링 치즈, 고다치즈, 산베르크 치즈, 콜비치즈 등 다양한 치즈들을 사서 먹어볼 수 있다. 임실치즈테마파크(063-643-2300)는 유럽풍의 건축물과 치즈체험장, 식당, 전망대 등이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안성맞춤이다. 식당에서는 치즈피자·치즈돈가스 등을 낸다.

섬진강에서 잡은 다슬기로 다슬기탕(다슬기수제비)을 내는 식당이 많다. 강진면사무소 앞 성원회관(063-643-1063)에 손님이 많다. 섬진강 민물고기를 직접 잡아 매운탕을 끓여내는 강산에(063-643-7408)는 다슬기부침개도 맛깔나게 내놓는다.

임실=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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