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단기간 성과 포석 핵탄두·ICBM 조기 반출 카드
北 수용 땐 테러지원국 해제… 무역대표부 설치 제안한 듯
강경화-볼턴, 카자흐 사례 논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를 우선순위에 놓고 북한과 의견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핵무기 조기 반출 등 신속한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미국이 대북 제재 해제, 관계 정상화의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빅딜’이다. 미 국무부는 비핵화 완성 시한으로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내인 2020년을 제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비핵화 전 제재 해제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비핵화 조건으로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요구해 온 북한과 가장 대립했던 지점이다. 그랬던 미국이 대규모 경제지원 카드를 꺼낸 것은 북한의 선제적 조치를 유도해 비핵화 시기를 앞당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국이 북한에 과감한 핵 폐기 조치를 요구했고 북한도 이에 호응하면서 상당부분 접점을 찾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2차 방북에 동행했던 브라이언 훅 국무부 선임 정책기획관은 11일(현지시간) PBS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 첫 임기 4년이 끝날 때까지 불가역적 비핵화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2021년 1월까지다. 훅 기획관은 “그것은 북한 사람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비핵화 시한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건 처음이다.
정부 소식통은 13일 북한의 선제조치와 관련해 “미 본토나 주일미군 괌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와 ICBM 중 일부를 북·미 정상회담 직후 이른 시일 내 국외로 이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핵무기 국외 이전은 ‘완전한 비핵화’(CVID)를 위해 반드시 밟아야 할 조치로 꼽혀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1일(현지시간) 만나 북한에 적용할 비핵화 모델을 집중 논의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카자흐스탄 사례를 언급했다.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신생 독립국이 된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자국 영토에 실전 배치됐던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는 대가로 서방국가로부터 경제지원과 체제안전 보장을 받았다. 이때 미국은 ‘넌-루가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 국가의 핵 해체비용과 대체연료 비용, 핵 과학자들의 전직 등을 지원했다. 넌-루가 프로그램은 이 법을 공동발의한 샘 넌 전 상원의원과 리처드 루가 전 상원의원의 이름을 딴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선제적 조치를 요구하면서 테러지원국 해제와 미 독자 제재 해제, 평양·워싱턴 간 무역대표부 설치 등의 보상을 제안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는 순간 세계은행(WB),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이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며 “북한이 국제경제 체제에 편입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미 관계 정상화 측면에선 양국 간 연락사무소를 건너뛰고 곧바로 무역대표부를 설치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북한이 미국이 요구한 핵무기 국외 반출을 수용하더라도 실제 이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우선 북한이 신고한 핵무기를 무기급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 전문가들이 확인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이후 이를 분해해 어느 국가로 어떻게 이관해 처리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상당한 만큼 주변 국가와의 공조도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