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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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신용목] 마음을 생각하는 마음

입력 2018-10-22 04:05:02


나는 경기도 일산 외곽 아파트에 산다. 교통편이나 편의시설은 부족하지만 지대가 높아 앞이 탁 트였다. 좌로는 북한산이 우로는 계양산이 다 보인다. 우리나라 도시 외곽의 운명처럼 공사장 소리가 끊임없지만, 나는 먼 곳까지 보이는 이 집이 좋다. 대체로 행복한 풍경이 보이지만 간혹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열흘 전, 바로 눈앞에서 치솟아 오른 검은 연기 기둥을 온종일 걱정스레 쳐다보아야 했다. 그 후론, 풍등을 날려 고양 저유소에 불을 낸 스리랑카인에 관한 처분을 또 조마조마 지켜보았다.

이제 좀 시들해진 일이지만 나는 많이 화가 났고 조금 기뻤지만 사실 내내 슬펐다. 법에 관한 한 나는 문외한에 가깝고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다. 시시비비나 제도의 문제를 떠들 만한 처지가 못 된다. 자격지심이랄까. 쓸모없다는 문학을 심지어 가르치기까지 하다 보면 문학이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궁여지책으로 법학이나 사회학과 견주어 겨우 답을 구해볼 뿐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스리랑카인이 주운 풍등에 불을 붙여 날린 것이 하필 저유소에 떨어져 불이 났다. 인간 행동의 범위를 결정하는 법은 화재의 인과관계를 밝혀 잘잘못을 따진다. 인간 행동의 맥락을 고찰하는 사회학은 외국인 노동자의 생활 패턴과 저유 환경을 살피고 문제점을 찾는다. 법학이 결과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사회학은 원인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 둘은 서로를 보완하며 새롭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

문학은 어떻게 하는가. 점점 추워지는 계절, 바닥에 떨어진 풍등을 주워 드는 외국인 노동자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이다.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말이 생각나 누군가가 빌었던 풍등에라도 기대어 가만히 불을 붙이는 마음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무엇을 하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랑’이다. 사랑 말고, 그의 선처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명할 수 없다. 내가 당신의 가을을 생각하는 일을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을 나는 멀리 보는 일이라고 믿는다. 때로는 행복하게 때로는 걱정스럽게.

신용목(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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