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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칼럼] 대통령 지지율 독해, ‘이영자 현상’이 아닌 ‘전전전 현상’

입력 2018-11-27 04:05:01


대통령에게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주는 세 가지가 있다. 야당, 언론 그리고 대통령 지지율이다. 야당과 언론이야 민주주의의 숙명이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없는데 수시로 발표되는 지지율은 언제부턴가 대통령을 저울대에 올리는 의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정의 기상도는 대통령 지지율에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는 1920년대 미국의 여론조사업체 갤럽이 시작했다. 대통령 지지율이라는 용어는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 직무수긍평가(presidential job approval rating)다. 그 둘은 뉘앙스가 다르다. 우리말에서 지지율은 정치적 지지로 바로 읽힌다. 하지만 이 조사는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수긍 여부를 묻는 것이다. 야당 쪽에서 늘 지지율이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불만인 이유도 이런 뉘앙스 차이와 ‘살짝’ 관련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년반 동안 지지율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고공지지율의 요인은 탄핵 기저효과와 적폐청산몰이 그리고 남북 관계 기대였다. 궤멸과 자멸 사이에서 허우적댄 보수의 무력함 덕에 새 정권의 국정 주도권은 강력했고, 비핵화와 남북평화시대의 희망으로 국민들의 광범한 지지를 끌어냈다. 이 사정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제1야당에 대한 국민 비호감도는 지난주 조사에서도 75%에 달한다. 남북 관계에 대한 기대도 여전하다. 야당이 잘했다면 상황은 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의 이벤트 효과가 끝나면서 지난 9월 초 50%대 초반 지지율로 회귀했다.

그런데 전체 지지율보다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매우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크게 줄고, ‘매우 못 하고 있다’는 응답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기준으로 두 수치는 26% 수준으로 같아졌다. 국정 지지율을 볼 때 필자는 이 두 항목을 가장 유심히 본다. 그것이 지지의 강도와 비판의 강도를 중심으로 집권세력에 대한 체감 지지도를 알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의 지지율 추이를 볼 때 적극적 지지층이 25% 이하로 내려가면 그것은 정권에 위험 신호가 켜졌다고 봐야 한다. 리얼미터의 9월 4주 조사와 비교하면 적극 지지층은 호남이 61%에서 35%로, 대구·경북이 33%에서 7%로, 서울이 46%에서 28%로, 부산·경남이 34%에서 18%로 빠졌다. 세대별로도 20대에서 적극 지지층이 50%에서 25%로 감소했고, 30∼40대에서도 22∼23% 포인트가 떨어졌다. 직업별로도 사무직이 27% 포인트를 비롯해 대부분 20% 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그에 반비례해 매우 못함은 크게 늘었다. 따라서 지지율 하락은 이영자(이십대, 영남, 자영업자) 현상이 아니라 전전전, 즉 전 세대, 전 지역, 전 계층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

적극 지지층이 20% 수준으로 내려가고 적극 비판층이 30% 이상으로 올라가면, 시중 정담에서 셋 중 둘은 국정을 비판한다. 지지자는 입을 열기 힘들고, 비판자는 열을 올리는 형국이 된다. 흔히 지지율이 떨어지면 청와대의 반응이 이렇게 나온다. ‘국정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꿋꿋이 밀고 나가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 뜻은 가상하나 현실은 천만에다. 지지율이 추락하면 국정 동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야당과 언론의 비판은 거세지고, 관료 사회도 잘 안 움직인다. 그래서 원하는 정책도 잘 구현되지 않는다. 지지율에 매달리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없다.

특히 최근의 지지율 하락은 사건과 스캔들 때문이 아니라 국정 방향에 대한 회의와 국정 성과의 부재에 기인하는 것이어서 심각하다. 염증이라기보다는 종양에 가깝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국민들이 집권세력에 등을 돌리는 가장 큰 이유는 ‘무능’과 ‘오만’이다. 여기에 비리가 겹치면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이 모두 그랬듯이 불행한 집권 말기를 경험하게 된다.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집권 중반 지지율 위기를 극복하고 퇴임 직전 60% 이상의 높은 지지율로 마감한 대통령이 두 명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과 빌 클린턴이다. 이유는 동일하다. 뚜렷한 국정 성과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들은 국민들을 편 가르지 않고 아우르는 소통 능력이 탁월했다.

반면 이 정부는 국정의 의도와 결과가 크게 어긋나고 있다. 침대를 사람에 맞추지 않고 사람을 침대에 맞추려고 하는 ‘프로크라테스 침대’ 식으로 정책을 쓰기 때문이다. 경제 외교 안보 등 외부 환경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국정기조를 전환할 기회다. 종양을 걷어내는 수술 없이 진통소염제로만 지지율 하락 추세를 반전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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