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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조윤석] 그럼, 지구는 누가 지키나

입력 2018-11-28 04:05:01


27일 새벽 마스 인사이트라는 우주선이 화성에 잘 도착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리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관계자는 앞으로 10년간 연습해서 2030년에는 화성에 인간을 보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다혼’이라는 접이식 자전거의 아버지로 유명한 나사 출신 데이비드 혼 박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인류가 우주로 이동하는 것과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이동하는 것 중에 뭣이 더 중한디…”라고 했다. 혼 박사는 물리학자다. 그가 보유한 다수의 레이저 관련 특허는 미사일과 우주로켓에 사용될 만큼 우주과학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오늘의 성취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 축하할 만한 일이지만 그래도 축하만 하기에는 그래서 한마디 한다. 그럼, 지구는 누가 지키냐고.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져서 북극의 빙하가 다 녹아버리는 사이에 러시아의 농산물 생산량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 매년 6m 이상 북상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 얼어붙어서 아무 쓸모없던 러시아의 넓은 영토가 쓸모 있는 땅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 정부는 현재 국토의 13%인 농경지 면적을 2020년까지 24.8%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 1억3000만t의 곡물을 생산했다. 1978년 소련 집단농장 시절 이후 최대 생산량을 기록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밀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세계 2위 밀 수출국이던 미국을 처음으로 제친 데 이어 올해는 EU까지 밀어내고 사상 처음 세계 1위 밀 수출국이 됐다. FT는 기후변화의 혜택과 탄탄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몇년 안에 러시아가 세계 1위 농업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하지만 8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2010년 8월 러시아는 1000년 만이라는 기록적 폭염이 계속됐고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는 생산량이 급감한 밀의 수출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국제 밀 가격이 오르고, 이집트는 러시아로부터 밀 수입을 할 수 없게 됐다. 이집트 사람들은 ‘발라디’라는 둥글넓적한 밀을 주원료로 하는 빵 ‘아이쉬’를 주식으로 삼는다. 연간 630만t을 수입하는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이며, 수입물량의 6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집트 내 밀 재고량이 줄면서 빵 가격이 급등했다. 2011년 2월 초 국제 밀 가격은 2010년 7월 초 대비 70.8% 상승했다. 이집트의 주식인 아이쉬 가격이 치솟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장기 독재에 대한 불만이 더해지면서 민주화 시위로 번졌다. 이후 반정부 시위는 알제리 리비아 예멘 바레인 이란 등으로 번져나갔다. 러시아 가뭄이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민주화로 이어지는 나비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밀 가격 상승은 ‘재스민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비슷한 시기에 시리아에선 2007년부터 2010년까지의 가뭄과 정부의 정책 실패로 유례없는 흉작 사태가 벌어졌다. 농업 기반이 파괴된 농촌에서 수백만명의 주민이 도시로 밀려들었다. 자원 배분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높아만 갔다.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폭압과 ‘아랍의 봄’ 시위 등 다른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 요인이 결합해 2011년 3월 대규모 반정부 봉기로 이어졌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시리아 내전은 기후과학자들이 기후변화와 무력 분쟁의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밝힌 최초의 전쟁’이라고 평가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지난 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러시아와 미국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하기 위한 유럽군대 창설을 촉구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아 진행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국과 러시아, 심지어 미국에 대항해서도 우리는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들으며 “기후변화가 특정 환경에서 무력 충돌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합당한 공통의 우려가 있다”는 ‘기후변화 정부 간 패널(IPCC) 실무그룹’의 경고를 실감하며, 그럼 지구는 누가 지키나 하는 걱정을 한다.

조윤석 십년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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