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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장지영] 화성인 침공과 화성 이주

입력 2018-11-30 04:05:01


1938년 10월 30일 일요일 저녁 미국 뉴저지주. 라디오를 듣던 일부 청취자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당시 CBS 라디오에서 방송되던 드라마 ‘우주 전쟁’에 나오는 화성인의 침공을 실제라고 착각한 것이다. 갑자기 뉴스 속보가 나온 뒤 “실제 상황”이라는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폭발음까지 들렸으니 청취자들이 두려움에 떨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화성인 침공 소동은 영국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1898년 동명 소설을 영리하게 각색하고 연출한 젊은 연출가 오손 웰스에게 유명세를 안겨줬다. 이후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긴 오손 웰스는 오래지 않아 영화계의 거장이 됐다.

소동의 바탕이 된 원작 소설 ‘우주 전쟁’은 SF 장르의 고전으로 유명하다. 소설은 지구에 온 화성인들이 첨단 무기와 기계로 인간들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하는 등 승승장구하다 박테리아에 감염돼 죽는 이야기를 그렸다. 인간과 달리 화성인은 지구의 미생물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SF 장르에서 사랑받는 외계 생명체의 습격, 행성 간 전쟁, 첨단 로봇 등의 아이디어는 모두 ‘우주 전쟁’에서 유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화성인의 모습을 지구보다 중력이 약한 화성의 특성을 고려해 뇌, 심장 등이 커짐으로써 문어와 비슷한 형태가 됐다고 추론한 대목은 수많은 SF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허버트 조지 웰스가 ‘우주 전쟁’을 쓴 것은 19세기 말 구미 천문학계의 화성 열풍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탈리아의 조반니 스키아파렐리와 미국의 퍼시벌 로웰은 화성 관측에서 발견된 수많은 줄무늬를 ‘운하’라고 봤다. 또 영국의 윌리엄 허셸은 화성의 극지방에서 하얗게 빛나는 부분이 얼음이라고 주장했다. 즉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바탕인 물이 존재하며 운하를 만들었다는 추론은 당연히 화성인의 존재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인류에게 오랫동안 신비로운 존재였던 화성은 64년 미국의 화성탐사선 매리너 4호가 화성 궤도에 접근하는 데 성공하면서 그 실체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매리너 4호가 지구에 전송한 사진을 통해 화성에 고도로 발달된 생명체는 물론이고 대량의 물이나 운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됐다. 76년엔 미국의 바이킹 1호가 최초로 화성에 착륙해 화성 표면을 직접 탐사했는데, 태양계 행성에 인류가 처음으로 탐사선을 착륙시킨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미국 외에도 여러 나라가 앞다퉈 화성 탐사에 나선 가운데 올해는 처음으로 화성 내부를 조사할 미국의 인사이트호가 착륙에 성공했다. 2020년에도 미국 러시아 중국 등에서 화성 탐사선을 보낼 계획이다.

인류가 화성 탐사에 열을 올리는 것은 태양계 행성 중에서 지구와 가장 비슷한 행성인데다 거리도 상대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언젠가 환경오염이나 자원 고갈 등으로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될 때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만 할 경우 화성은 그 대안으로 꼽힌다. 실제로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2001년부터 지구 종말에 대비해 화성 식민지 개척을 주장해왔다. 머스크는 2022년까지 화성 기지 설치 장비를 실은 화물선을 보내고 2024년에는 인간을 화성에 보내겠다는 계획 아래 로켓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머스크만이 아니라 화성을 지구처럼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드는 ‘테라포밍’ 프로젝트에 여러 나라 과학자들이 매진하고 있다. 화성 테라포밍은 인류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화성의 기온을 높인 뒤 물을 공급하고 토양에 박테리아를 정착시키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화성의 대기층이 너무 얇은 것이 문제다. 온실기체인 이산화탄소를 화성의 대기층에 생성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현재 기술로는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주 전쟁’에서 상상력으로 그려낸 첨단도구가 수십년도 안 돼 현실로 만들어진 것처럼 화성 테라포밍의 필수 요소인 이산화탄소 생성 문제도 언젠가는 해결되지 않을까.

장지영 국제부 차장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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