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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지호일] 탁현민, 홍카콜라 그리고 키치정치

입력 2018-12-03 04:05:01


“이미지 메이커에 의존하는 靑 질세라 유튜브로 달려가는 野… 싸구려 예술품 달콤한 독약에 한없이 가벼워지는 정치”

청와대 앞마당을 덮었던 첫눈은 녹아 사라진 지 오래지만, 탁현민 선임행정관은 여전히 청와대에 있다. 애초 탁 행정관의 거취와 첫눈이 무슨 상관있겠느냐만, 이 무관한 둘을 연결시킨 건 청와대였다. “첫눈이 오면 놓아 주겠다”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수사(修辭)는 정무적 판단의 문제를 감성의 영역으로 치환해 꼬리를 남겼다. 사표는 반려됐으나, 그 반작용으로 탁 행정관은 첫눈이라는 어정쩡한 시한의 임기에 잡힌 신세가 됐다. 그러니 야권에서 첫눈을 보고 “탁 행정관을 그만 놓아주라”며 말꼬리를 잡았다 해도 청와대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어찌됐든 탁 행정관이 정부 이벤트에 감성을 입혀 메시지 효과를 높이는 능력만큼은 탁월한 것 같다. 정치적 식견이나 비전보다 감성적 제스처, 심금을 울리는 장면 하나가 여론을 움직이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원리를 진작 인식하고, 적용할 줄 안다는 얘기다. 보수정당에서 ‘정치 쇼 기획자’라는 비난과 동시에 “우파 탁현민이 필요하다”는 이중적 반응이 나오는 건 이미지 메이킹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일 터다.

정치인에게 이미지는 자산이다. 그 상당부분은 사이버 공간에서 형성되고 있다. 대중은 가벼운 얘깃거리에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가차 없는 댓글로 특정 정치인에게 특정 이미지를 선사한다. 특히 영상 미디어의 발달은 메시지 형태를 논리적이고 서사적인 형태가 아니라 감각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로 바꿔놓았다. “좌파들은 늘 인터넷 찌질이들을 동원한 이미지 조작으로 우파 정당의 리더들을 희화화해 당의 지지율을 떨어트리는 야비한 수법을 사용해 왔다”(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한탄도 나오지만, 그간의 언행이 낳은 이미지의 필름은 한 번 씌워지면 여간해서 떼어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여기에 소셜 미디어 및 유튜브로 대표되는 1인 방송 플랫폼의 확산은 정치 생태를 밑동부터 흔들고 있다. 많은 정치인들이 기존 대중매체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콘텐츠를 생산해 대중에게 바로 전달하는 루트에 눈을 돌리는 중이다. 정치인의 자기 브랜드화 시대가 본격 막이 오른 것이다.

홍 전 대표는 지난 6·13 지방선거 패배 이후 수개월간 ‘페이스북 정치’에 열을 올리더니 최근 유튜브 채널 ‘TV홍카콜라’ 개국을 예고했다. 현실정치 복귀의 동력을 개인 방송에서 모으겠다는 구상이다. ‘신(新)보수 여전사’라는 별칭이 붙은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을 비롯해 여야 여러 의원들도 자신의 이름을 딴 ‘○○○TV’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유튜브의 ‘조회 수’, 트위터의 ‘팔로워’를 늘리는 것으로 정치인으로서 존재의 무게를 더하려 한다. 개별 정치인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소통 방식은 보스 중심, 계파 중심 구도를 깨고 정당 민주주의를 앞당길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이러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이 분명하지만, 정치 발전 측면에서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흥행이 곧 생명인 1인 미디어는 속성상 가볍고 단편적인 메시지, 자극적인 정보가 중심이 되기 십상이다.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보다 얼마나 잘 치장해 많이 팔리는가에 관심을 둔다. 추종자들을 비롯한 특정집단을 타깃으로 한 맞춤형 이미지를 반복 생산하고, 이렇게 편향된 사실들은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전파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 과정은 정당이란 울타리 밖에서, 소속된 정당의 게이트키핑 역할이 생략된 채 정치인 개인의 독자적 판단과 사후적 책임 속에 작동한다.

정치가 오히려 여론의 분열을 부추기는 진원지로 인식돼 결국 혐오와 냉대의 대상이 될 위험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비록 1인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메시지가 실상 정치권 일부의 목소리에 불과함에도 말이다.

한없이 가벼워진 정치는 ‘키치’화(化)로 이어질 수 있다. 키치는 사이비 또는 대량으로 복제된 싸구려 예술품을 뜻하는 미술 용어다. 조중걸 박사는 저서 ‘키치, 달콤한 독약’에서 “고전예술이 양의 가죽을 쓴 양이라 한다면, 키치는 양의 가죽을 쓴 늑대”라고 규정했다. 이를 정치에 대입한다면 키치적 정치는 겉으로 국민과 정의를 찾지만, 그 속은 음험한 모략, 당선에 대한 야욕이 가득 한 속물 정치라 할 수 있겠다. 진정한 정치의 생존을 위협하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지호일 정치부 차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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