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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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착한 정치는 실패한다

입력 2018-12-04 04:05:01


대통령은 정책·소통·실행력 함께 갖춰야 성공하는 자리
특히 실행 능력 없으면 임기 내내 ‘착한 캠페인’만 하다 끝난다
낡은 사고와 진영 논리 벗어나 자기 정치의 유혹을 떨치고
대통령의 실행력 높이는 데 몸을 던질 참모들이 필요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과 관련해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가 2015년 1월 미국인들에게 오바마를 나타내는 단 하나의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답변에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좋은(good)’과 ‘무능한(incompetent)’이었다. 집권 2기의 3년차인 오바마가 임기를 채 2년 남겨놓지 않은 때였다. 임기 첫해 2009년, 평균 75%의 높은 지지율을 만끽하던 오바마는 1기가 끝나갈 무렵(2012년) 50% 밑으로 떨어졌고, 201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2015년 내내 지지율 40% 중반에서 헤맸다. 높은 지지율이 급락하는 와중에 나타난 ‘좋은데 무능한’ 이미지는 국민이 정권에 대한 신뢰를 접기 시작했다는 뜻이다(그의 개인기와 대중에게 파고드는 흡인력으로 임기 말에는 56%를 기록했다).

대선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한 적 있는 일레인 카마르크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 교수는 책 ‘대통령은 왜 실패하는가’에서 대부분 대통령이 실패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를 이렇게 적었다. ‘대통령은 정책, 커뮤니케이션, 실행 능력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추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좋은 인상과 영감을 주는 능력이 뛰어나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지만,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기업과 마찬가지로 실행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대통령 옆에는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많지만, 이들의 능력을 조화롭게 결정하지 못하면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전략 자체가 잘못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야당은 정책 편향성을 비판하겠지만 정치 공세일 경우도 적지 않고, 앞뒤 가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가는 대통령도 없다. 문제는 실행 능력이다. 전략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실패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정책으로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은 고민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대통령은 ‘영원한 선거 캠페인’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거 캠페인은 무조건 착하다. 포퓰리즘일 수밖에 없다. 그게 선거의 본질이다. 청와대의 최측근 보좌 그룹은 대부분 선거 캠페인에 함께했던 사람이다. 이들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다. 그런데 책임 있는 실행 능력은? 이런 정치팀은 선거운동 때 굳어진, 또는 정당판이나 비정부기구, 단체에서 습득한 사고·해결 방식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니 청와대는 여론을 상대로 임기 말까지 ‘영원한 선거 캠페인’에 빠지게 된다.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이미지로 승부를 내며, 착하게만 행동하면 일단 즉자적 반응이 좋다. 결국 조화와 균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영원한 선거 캠페인’류의 착한 정치는 그래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대통령은 청와대 특별감찰반 직원들의 일탈 행위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청와대, 나아가 공직사회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징후다. 어느 소규모 집단에서 발생한 단발성 일탈이 아니다. 대통령의 최측근 자리인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이 있었고, 술을 마신 경호실 직원의 부적절한 행동도 있었다. 뭐가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단순한 기강 해이만이 아니다. 그들도 문재인 정권 핵심 인사들의 분위기를 읽고 같은 편에 섰으면 이 정도 일쯤이야 생각한 건 아닐까. 같은 진영에서 충성심만 보이면 다 괜찮다는 인식이 배어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되면 책임성은 희박해진다. 실행 능력은 더욱 약해진다. 수석비서관 하나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이나 최저임금제, 남북 관계 개선 등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실행 능력과 결과에 회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착한 정책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뛰어났을지 몰라도 실행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9·11테러를 예견할 수 있는 정보의 조각들은 훌륭히 모았다. 그러나 이것들을 연결해 결정적 정보를 생산해내는 데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 취임 후 구성된 백악관 안보참모진은 냉전 시대의 사고와 대응 방식에만 익숙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태의 테러, 알카에다라는 새로운 집단의 대규모 공격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9·11 당시 백악관 NSC 대테러 수석보좌관이 훗날 저서 ‘모든 적들에 맞서’에서).

지금 청와대는 어떤가. 1980, 90년대에나 통했을 법한 사고 방식, 운동 방식, 사회변혁 방식을 갖고 본질적 차원이 다른 4차산업 시대의 대한민국을 운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자기 정치를 하거나, 자기 이상을 실현하려는 참모들이 아닌, 진정으로 대통령의 실행 능력을 높이는 데 몸을 던질 수 있는 참모들이 필요한 때다. 그런 이들이 많아야 대통령이 실패하지 않는다.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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