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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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이 황교익에게, “저는 IMF생이에요”

입력 2018-12-05 04:05:01


안녕하세요, 맛칼럼니스트씨.

저는 평범한 대학생이에요. 22세. 요즘 돌아가는 세상일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해요. 너무 모르시는 것 같아서요.

제가 태어나던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지요.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났고, 그래서 국제통화기금(IMF)에 돈을 빌린 것이라고 하더군요. 돈을 빌렸으니 이를 갚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였다고 들었어요. 아빠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았어요. 직장생활 10년 만에 실업자가 되었지요. 엄마는 주부였어요. 갓 태어난 저를 포함해 달랑 세 식구이니 아껴서 버티면 곧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셨대요. 금 모으기 행사에 엄마가 금반지와 금목걸이를 내었대요. 아빠가 칭찬했대요. 집안 살림보다 국가 살림을 더 걱정하는 애국자 가족이지요. 아파트 대출금 이자가 오르기 시작하더래요. 소득이 없으니 이자 부담이 컸겠지요. 분양가보다 싸게 팔았대요. 그 돈으로 단칸 월세를 얻었대요. 장사하신다고, 가게세가 필요했던 거죠. 조그만 식당을 열었어요. 엄마 아빠가 함께 장사를 하세요.

부모님은 지금도 식당을 하세요. 평생직장이지요.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족이지요. 우리는 행복해요. 과외를 못해 좋은 대학을 못 갔지만 괜찮아요. 다들 비슷비슷하게 살잖아요. IMF로 돈을 번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저희 부모님은 그런 재주가 없으니 어쩌겠어요. IMF 이후 빈부차가 커졌다고 하더군요. 자본주의라는 게 그런 것 아닌가요. 부자 꿈은 없어요. 소확행이면 되어요.

학자금은 알바를 하면서 채워요.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할지는 정해둔 게 없어요. 임시직이어도 괜찮아요. 결혼할 생각이 없거든요. 아이 가질 생각도 물론 없고요. 돈을 모아 여행을 다니려고 해요. 소확행이지요. 어차피 큰 꿈을 가질 수 없잖아요. 금수저는 금수저의 세상이 있고, 흙수저는 흙수저의 세상이 있어요. 저는 행복해요. 한번 사는 세상, 행복하면 되잖아요.

올해 직장인 점심 비용이 얼마인 줄 아세요. 6230원이에요. 한 취업포털에서 조사한 거래요. 저는 그 정도도 못 써요. 5000원 이하이지요. 식당에는 못 가요. 편의점에 먹을 만한 게 있어요. 도시락, 삼각김밥, 컵밥, 컵라면을 먹어요. 가끔은 친구들과 저녁을 먹어요. 삼겹살이 최고고요, 치킨, 떡볶이, 순대, 부대찌개 등등을 먹어요. 저렴하게 파는 식당 많아요. 친구들끼리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게 더없이 행복해요. 다들 IMF생들이거든요. 가족 이야기를 나누면 어찌 그리 비슷한지 놀라워요. 실직과 파산, 경매, 이사, 대출, 소송 같은 단어들이 많이 나와요. 우리 부모님의 일인데 우리 일이기도 해요.

맛칼럼니스트씨가 나오는 방송을 자주 보았어요. 전국의 맛집들 찾아다니는 직업이 무척 부럽더군요. 그런데 말이에요, 맛칼럼니스트씨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폄하하시더군요. 떡볶이와 치킨은 맛없다 하시고 삼겹살은 일본 수출하고 남은 부위라고 하고 라면은 자극적이라고 하고, 그러시더군요. 저도 그 음식이 아주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요. 넉넉하면 그보다 맛있는 음식을 사먹겠지요.

저희 IMF세대는 먹방을 즐겨 봐요. 거기 나오는 음식이 저희가 먹는 음식이거든요. 연예인들이 나와서 떡볶이 치킨 삼겹살 순대 등등 저희의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해주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뿌듯해 와요. 위안이 되어요. 돈 많이 벌고 유명한 이들도 저희 음식을 맛있다고 해주니까요. 맛칼럼니스트씨도 그러면 되어요. 연예오락 프로그램이잖아요. 우리에게 위안을 주세요. 그래야 우리가 행복해져요.

맛칼럼니스트씨가 쓴 글을 본 적이 있지요. “정크푸드를 정크푸드인 줄 모르고 먹는 사람은 없다.” 맞아요. 저희들도 저희가 먹는 음식이 어떤지 잘 알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나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우리한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아요. IMF 때에 사다리를 치워버렸잖아요. 사다리를 잊은 지 오래예요. 소확행이면 되어요. 우리가 왜 지금 이런 음식을 먹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아요. 불편하기만 해요. 조용히 해주세요. 우리에게 주어진 음식이나마 맛있게 먹게요. 아시겠지요, 맛칼럼니스트씨. 고마워요.

황교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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