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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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윰노트-한승태] “이거는 AI도 못합니다”

입력 2018-12-07 04:05:01


눈치 채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 직업 관찰 다큐멘터리에 2~3년 전만 해도 낯설었을 장면 하나가 더해지고 있다. 작업을 하던 사람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시연해 보이면서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이거는 눈으로 위치를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설치해야 하는 거라 ○○도 못합니다.” 누가 빈칸에 들어갈지는 쉽게 짐작하셨으리라. 인공지능(AI)이다. 우리는 직업적 자부심을 ‘나는 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것’에서 찾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정은 예술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지난 10월에는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5억원에 판매됐다. 2년 전에는 일본 연구진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쓴 추리소설이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하기도 했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무수히 많은 문학 공모전에서 떨어져본 사람으로서 단언하건대 1차 심사 통과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이렇듯 인공지능의 발달은 작가들에게도 공통의 화두를 던져준다. 즉, 컴퓨터가 사람보다 멋진 작품을 쓸 수 있는 시대에 왜 인간이 글을 써야 하는가. 나는 르포작가로서 내가 찾은 이유를 말해보고 싶다.

수년 전 나는 우연히 충남의 어느 산란계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됐다. 하지만 한 달을 못 채우고 뛰쳐나왔다. 닭이 너무 무서웠다. 평소에 동물을 무서워하거나 특별히 새를 싫어하는 게 아닌데도 그랬다. 그곳에서 본 닭들의 몸에는 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피부는 상처로 가득했다. 전자레인지만한 케이지에 닭이 서너 마리씩 들어가 있었는데 네 마리가 들어 있는 경우에는 제일 약한 닭이 바닥에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그 안에서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피가 나도록 서로를 쪼아대고 있었다. 내가 할 일은 알을 줍고 매일 같이 죽어 나가는 닭들을 치우는 것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닭들을 보고 내가 그토록 놀랐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양계장에 대해 모르고 간 게 아니었다. 산란계 한 마리에게 허용된 공간이 0.05㎡이며(현재는 0.075로 늘었다), 그것이 A4 용지 절반만한 크기이고, 좁은 공간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닭들이 서로를 쪼아댄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뛰쳐나온 농장에는 쭉 알고 있던 그 정보들이 그대로 구현되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정보는 모두 객관적이고 정확했지만 그것을 양계장에서 실제로 마주친 모습과 비교하자면 현실의 절반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어떤 의미에선 현실과 아무런 상관없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정보라는 것은 말하면서 동시에 감춘다. 누군가 닭이 0.05㎡ 크기의 공간에서 살아간다고 했을 때 거기에 거짓말은 없다. 상대를 속이려는 의도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말함으로써 닭들이 온몸이 상처로 가득해질 때까지 서로를 공격한다는 사실은, 약한 닭은 바닥에 깔리게 되고 며칠 못 가 폐사하고 만다는 사실은 감추어진다. 그렇게 각자가 육체로 견뎌야만 하는 삶의 조건들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 속에 묻혀 버린다. 그것이 수치 위주로 제시되는 정보의 속성이다.

오늘날 르포르타주가 여전히 의미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정보의 ‘불투명함’ 때문일 것이다. 경험과 관찰에 근거한 글쓰기는 현장을 찾아가 함께 먹고 자고 일하며 숫자로만 표현되던 정보들이 실제로 어떤 얼굴을 하고 있고 어떤 냄새가 나는지 보여준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영영 드러나지 않았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들추어낸다. 정보가 현실을 감추는 곳에선 여지없이 고통이 발생한다. 나는 우연히 동물들의 고통을 목격한 것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세상이 문제없이 굴러가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정보들이 실은 사회 곳곳의 고통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정보와 실제를 일치시키는 작업은 중요하다. 하지만 알고리즘을 가동하고 빅데이터를 분석한다고 정보가 씌운 막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노동자의 말을 빌리자면, 오직 우리 사회의 실체를 “눈으로 하나하나 확인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한승태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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