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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이성규] 정의란 무엇인가

입력 2018-12-07 04:05:01


4년 전 얘기다.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에 파견돼 근무 중이던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소속 과장의 금품수수 비리를 적발했다. 두 과장은 대기업에서 수백만원대 상품권을 받고 접대 골프도 쳤다. 공정위 소속 과장은 심지어 청와대 앞에서 대기업 관계자와 점심을 먹으며 공연 티켓을 받다가 현장에서 덜미를 잡혔다. 두 과장의 청와대 사무실 서랍에서는 상품권 뭉치가 나왔다. 청와대는 그러나 두 과장을 소속 부처에 돌려보내는 것으로 징계를 갈음했다. 공정위 소속 과장은 복귀 직후 사표를 냈고 명예퇴직금도 받아 챙겼다. 이 과정에서 공정위는 징계 하나 없이 오히려 대형 법무법인(로펌) 취업 알선까지 해줬다. 청와대가 공정위에 징계 요청을 한 것은 해당 과장이 이미 퇴직한 뒤였다. 공정위 비리 과장은 지금도 대형 로펌의 공정거래팀장으로 맹활약하고 있고, 기재부 과장도 요직을 거친 뒤 현재 해외 파견 근무 중이다.

당시 청와대의 내부 비리 감싸기 행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개인적 일탈행위일 뿐 청와대와 관련이 없고, 이들에 대한 (뒤늦은) 징계 요청을 해당 부처에 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발뺌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내걸었던 박근혜정부가 ‘비정상적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비리사건을 뭉갠 셈이다.

‘정의로운 사회’를 강조하는 문재인정부가 들어섰다. 최근 아이러니하게도 4년 전 청와대 내부 비리와 닮은꼴 사건이 발생했다. 힘 있는 부처에서 파견된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 소속 직원들은 공적인 권한을 개인의 승진 등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데 이용했다. 관련 업계로부터 접대 골프를 받았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청와대 대응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몰래 당사자들을 원대 복귀시켰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뒤늦게 해당 부처에 정식 징계 요청을 했다. 언론 비판에 청와대는 사건 대처가 대체로 잘 이뤄졌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페이스북에 “믿어주길 바란다. 정의로운 나라, 국민들의 염원 꼭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에 윤장현 전 광주시장의 사기 사건도 발생했다. 윤 전 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김모씨에게 4억5000만원을 뜯기고, 김씨의 자녀 채용 청탁까지 들어준 것으로 밝혀졌다. 윤 전 시장은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의 혼외자 말이 나오는 순간, 인간 노무현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불의와 불법행위는 감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정상사회보다 한 단계 높은 정의로운 사회를 외쳤던 지금 정부의 행태가 박근혜정부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2014년 소개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국내에서 100만부 이상 팔렸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켰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정의에 목말라 있었고, 그 목마름은 이후 촛불 시위를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문재인정부를 탄생시켰다.

샌델 교수는 저서에서 정의를 정확히 정의(定意)하지 않았다. 정의는 복잡다단한 선택의 문제이고, 시대와 현상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확실한 정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론처럼 보편적이라고도 했다. 지금 ‘내부 비리를 정의롭게 처리했다’는 청와대 주장에 동조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5공화국도 정의사회 구현을 내걸었다. 그때의 정의는 소수 권력층만을 위한 왜곡된 정의였다. 국민들은 지금 청와대에 묻는다. 과연 우리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로 가고 있는 게 맞는 것인지, 보편적인 정의관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인지. 국민들은 조국 민정수석의 경질 여부보다 이 사회가 과연 진보하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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