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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홍관희] NLL이 위험하다

입력 2018-12-10 04:05:01


9·19 남북군사합의는 ‘적대행위 금지’라는 명목으로 남북 접경에서 정찰활동과 훈련을 못하도록 했는데, 이는 우리의 일방적 무장해제와 다를 것이 없다고 안보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서해평화수역’을 설정함으로써 국군의 북방한계선(NLL) 방어 역량이 결정적으로 취약해졌다. NLL 기준 북방 50㎞ 남방 85㎞에서 완충 수역이 만들어져 이 수역 해병대와 해군이 해상훈련 및 포사격을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 NLL 수역을 추가로 비행금지구역에 포함시킴으로써 신속하고 효과적인 공중 대응마저 불가능하게 됐다. NLL은 지형적으로 북한의 기습도발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북한이 도발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강력한 보복 대응 메시지가 주효한 탓이었다.

이번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훈련 및 비행금지 조치는 북한에 강렬한 무력도발 유혹과 오판 요인을 만들어 주었다고 본다. 이대로 가다간 특수부대를 앞세운 북한의 기습도발에 우리가 당하고 말 것이라는 강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북한은 특수부대를 태우고 남하할 공기부양정 기지를 NLL 북방 50~60㎞밖에 떨어지지 않은 황해도 고암포에 신설해 놓았다.

해병대가 문재인정부의 비행금지구역 확대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걸머진 국군으로서 자연스럽고 정당한 대응이다. 예측 불가능한 북한의 행태를 감안해 모든 도발 시나리오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8일 북한군 저속(低速) 비행체가 강화도 인근 전술조치선(TAL)을 넘어와 우리 공군이 긴급 출격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아마도 NLL 및 한강 하구에 대한 우리의 군사대응 능력을 시험하려는 의도로 판단되는데, 군 당국의 보다 확고한 방어태세가 요구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김정은 답방에만 몰두하는 문재인정부의 굴욕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지금 시중에선 한반도가 제2의 월남으로 되는 것 아니냐는 안보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민족공조 관점에서 안보·국방 문제를 다루다 보니 시의에 맞지 않는 군축에 치중하게 되어 단독 방위가 불가능한 데다 한·미동맹마저 균열로 치닫고 있어 안보 불안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관심을 모았던 내년 한·미 독수리훈련도 결국 유예하기로 결론이 났다. 금년의 전면 중단에 이어 지속적으로 연합훈련이 미뤄지는 것은 동맹에의 적신호다. 훈련 없는 군대가 존속할 수 없음은 상식이다. 더욱이 훈련 중단이 문재인정부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미 태평양 공군사령관의 증언이 충격적이다. 그동안 정부가 말로는 한·미동맹을 외치면서도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동맹을 위태롭게 하는 조치들을 무모하게 취해 온 정황이 드러났다.

김정은 답방을 앞두고 확산되는 국내 남남 갈등도 이상 징후다. ‘백두’(白頭·김씨 왕조의 상징어)를 앞세운 친북단체들이 공공연한 김정은 찬양과 반미 선동에 나서는가 하면, 미 대사관 앞에서 성조기를 찢고 태영호 전 공사에게 “민족배신자의 최후” 등 노골적인 신변 위협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의 불법 행동을 규제해야 할 국가보안법은 시행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돼버렸다. 공안 당국이 정치적 고려에서 실정법 집행을 망설인다면 나라의 운명은 이미 쇠락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한국 정정(政情)이 이처럼 불안해지면 미국은 결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달 26일 ‘한·미동맹을 당연시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언제라도 동맹과 주한미군 위상에 결정적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암시로 들린다. 국내외 안보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는 지금, 문재인정부는 해병대 일선 지휘부의 의사를 존중하여 비행금지구역 확대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망국적인 남북군사합의의 폐기 용단을 내리는 것이 현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옳은 선택이다.

홍관희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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