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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권기석] 저출산, 과연 재앙일까

입력 2018-12-10 04:05:01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은 수업이 지루했는지 석유 이야기를 하곤 했다. 너희가 어른이 되는 20~30년 뒤면 중동의 원유가 바닥이 나 기름 값이 엄청 비싸질 거라고 했다. 자원은 한정적인데 인간은 계속 쓰기만 하므로 고갈이 멀지 않았다는 거였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에너지를 아껴 쓰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자원이 부족한 디스토피아에서 살아야 할 제자를 안타까워한 선생님은 중학교에도 또 있었다.

선생님들이 말한 20~30년 뒤가 바로 지금이다. 하지만 진도를 나가는 대신 해 주신 말씀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석유자원이 수십년 뒤 고갈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정적이라던 원유 매장량은 1980년 이후 계속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 자원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계속됐고 무엇보다 석유를 생산하는 기술이 발전한 덕분이다.

오히려 에너지는 무한에 가깝다는 시각마저 나타나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책 ‘사피엔스’에서 “불과 몇십년마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발견되었고, 덕분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총량은 계속 늘었다. 세상에는 에너지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에너지를 찾아내 필요에 맞게 전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다”라고 말한다. 1980년대 학교 선생님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쳐 교실에서 전파된 ‘자원고갈론’은 실패한 예측이라 말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 널리 유포됐지만 들어맞지 않은 예측은 하나 더 있다. 1969년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폴 에를리히가 쓴 책 ‘인구폭탄’이 세상에 나왔다. 지구 인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 식량 생산은 한계가 있으므로 대규모 기아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에를리히는 1970년대 인도를 비롯한 후진국에서 수억명이 굶어 죽을 것이라고 했다. 선진국도 이 운명을 피할 수 없어 2000년이 되면 영국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20세기 후반 여러 나라의 인구정책에 영향을 끼쳤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영국은 멀쩡히 살아남아 유럽연합 탈퇴를 모색 중이다. 기아는 아프리카에서 여전히 생명을 앗아가지만 그곳에서 더 치명적인 건 내전과 질병이다. 인류는 식량 생산을 대폭 늘리는 기술을 알아내 위기에서 벗어났다. 병충해에 강한 농작물을 가능하게 한 ‘녹색혁명’이 ‘인구폭탄론’을 실패한 예측으로 만들었다.

21세기에도 우리는 미래를 예측한다.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측은 ‘저출산 위기론’이 아닐까 한다. 저출산 현상으로 인구가 급격히 감소해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경제 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한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제기된 이 예측은 정부, 언론, 학계의 강화 과정을 거쳐 이제는 도전받지 않는 정설이 됐다.

그런데 저출산 위기론은 자원고갈론, 인구폭탄론과 많이 닮아 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 한두 가지를 근거로 미래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 위기가 국가 존립을 흔들 정도로 무시무시할 거라고 경고하는 점도 비슷하다. 세 예측 모두 기술 발전의 속도와 흐름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고려하지 않았거나 않고 있다. 과거 실패한 예측이 담고 있는 요소를 두루 갖고 있다고 해서 새로운 예측이 반드시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꾸 의문이 든다. 우리는 과연 미래 예측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정부는 저출산 위기론을 토대로 여러 대책을 냈다. 이제 패러다임을 전환해 출산율 목표를 포기하고 삶의 질 향상과 성 평등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한다. 늦었지만 이제야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것 같다. 들어맞을지 모를 미래 위기를 걱정하기보다 현재의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게 훨씬 낫다. 지금의 문제를 풀다보면 미래의 문제도 저절로 풀릴 것이다.

권기석 사회부 차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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