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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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칼럼] 따라 하려면 제대로 따라 하라

입력 2018-12-11 04:05:01


북유럽이 복지를 잘해 성공한 게 아니다. 복지는 결과이고, 이것은 경제적 번영 없이 불가능했다
그들 국가를 닮고 싶다면 협치와 시장을 살리는 일에 나서야
‘적대의 정치’ 펴면서는 북유럽 모델 따라갈 수 없어


현 집권세력의 로망은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이다. 실제로 이들 나라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은 우선 잘 산다. 스위스 노르웨이 등이 국민소득 8만 달러 대이고, 덴마크 스웨덴 등 대부분이 6만 달러 전후의 고소득 국가다. 게다가 행복도 지수에서도 늘 최상위권이다. 세계행복도 조사에서 대한민국이 57위를 차지했으니 부러울 만하다. 이들 나라를 본받겠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따라가려면 제대로 진단하고 제대로 배워야 한다. 여당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경제적 불평등이 심하고 복지가 약하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산다. 심지어는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이를 공표하기도 한다. 이를 근거로 소득주도성장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복지 확충에 매달린다.

하지만 여기에 두 가지 왜곡이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이 불평등 지표에서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특별히 나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경제포럼이 지니 계수 등 경제불평등을 중심으로 조사한 포용경제지수에서 한국은 16위이다. 낮은 수준이 아니다. 한국 밑에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이 있다. 세계 146개국을 건강 복지 환경 정보 교육 인권 등을 중심으로 조사하는 사회적 진보지수에서 대한민국은 18위였고, 지난 4년 간 가장 빨리 개선된 나라 군에 속했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복지가 세금을 내는 수준에 비해 낮지 않다는 것이다. 복지제도와 예산을 계속 늘린 면에서 보수 진보 정권은 차이가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복지예산은 32조에서 61조로 약 90% 늘었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68조에서 130조로 역시 90% 가까이 늘었다. 연평균 증가율이 약 8% 수준이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과 예산증가율을 훨씬 뛰어넘는다. 복지예산은 앞으로도 계속 늘려야 하지만 경제와 재정 여건을 감안한 적정 복지 수준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실패한 나라가 아니라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나라다.

무엇보다 ‘복지가 잘 돼서 북유럽 모델이 성공했다’고 보는 것은 반쪽의 진실도 말해주지 않는다. 필자는 복지가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고 본다. 이들의 복지는 성장 없이는 불가능했다. 시장과 기업을 쥐락펴락해서가 아니라 뛰게 해주어 가능했다.

헤리티지 재단은 아담 스미스 지표라고 불리는 경제자유도 조사를 매년 한다. 이 지수를 보면 극명히 드러난다. 조세 부담, 재산권 보호, 노동시장 유연성, 법치, 재정 효율성, 자유무역, 투자자유도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이 지표에서 복지 국가들이 상위에 포진하고 있다. 스위스 4위, 호주 5위, 아일랜드 6위, 덴마크 12위, 스웨덴 15위, 네덜란드 17위 등이다. 한국은 27위다.

신자유주의라고 비난받는 한국이 경제자유도에서 북유럽 복지국가들보다 훨씬 낮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이 지표는 경제적 번영 없이 복지는 불가능하고, 경제적 번영은 시장의 자율성 없이는 어렵다는 역사적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다.

이 점을 북유럽의 정치인들은 좌파 우파를 가릴 것 없이 일찍 깨달았다. 시장의 자율과 복지의 확충을 교환하는 노사정 타협이 전통이 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합의주의 정치양식이 확립되어 왔다. 1938년 스웨덴의 샬트셰바덴 협정이 효시가 된 이런 제도적 합의주의(corporatism)는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지난 70년 중 50년을 제1당과 제2당이 연정을 구성했고, 거의 모든 나라가 ‘연합의 정치’와 협치를 제도화했다.

협치의 공간은 정치와 경제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협치의 최종 무대는 시민사회다. 신뢰와 관용을 사회의 든든한 기초로 만들었다는 것이 ‘행복국가’의 요체이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공동체의 가치를 살려낸 것이다.

안 그래도 작은 나라들이라 친밀성과 유대가 강한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조화시킨 것은 두터운 시민사회의 자발적 협력과 친밀감을 통해서였다. 그런 인성과 태도를 키워주는 데는 교육이 큰 역할을 했다. ‘다시 태어나도 또 태어나고 싶은 도시’ 조사에서 더블린 코펜하겐 등이 최상위에 드는 이유는 ‘함께 사는 사람들이 좋아서’이다. 한국인의 삶의 질을 끌어내리는 요소가 낮은 공동체 지수인 것과 대조된다.

따라서 유럽의 복지국가를 닮고 싶다면 복지 확충도 좋지만 다음을 먼저 실천해야 한다. 첫째 협치를 하라. 둘째, 시장을 살려라. 셋째, 관용과 믿음의 시민사회를 북돋아라.

그 중심은 협치다. 그것은 정적을 겨냥하는 ‘적폐’를 앞세워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협력을 앞세우면서 국내에서는 ‘적대의 정치’를 방조하는 한 북유럽 모델 따라 하기는 속 빈 강정일 수밖에 없다.

박형준(동아대 교수·전 국회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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