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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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교회를 향한 두 가지 긴급 제언

입력 2018-12-11 00:05:01




한국교회는 내우외환을 통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위기는 새로운 영적 전성기의 계기가 될 때가 많았다. 따라서 내우의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거룩한 변화의 길로 가고 외환에 대해서는 단일대오로 강력 대처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긴급한 두 가지 외환은 무엇인가.

지난 여름 학회 참석차 유럽에 갔다가 사모로 있는 옛 독일 친구를 만났다. 남편 목사는 루터교회의 유명 설교자이자 집필가였다. 토스카나의 오두막집 식탁에 김나지움(독일의 중등교육기관)을 다니는 친구의 막내아들을 동석시켜 얘기를 나눴다. 자연히 그 아들의 진로로 화제가 옮겨가 아들을 깨어있는 목회자로 키우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뜻밖의 얘기를 했다. 아이도, 자기 부부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독일에서 목사가 되면 동성 커플이 주례를 부탁할 때 거절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포기했다고 했다.

독일에선 지난해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목회자가 이를 거절하면 교계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파장이 일고 심지어 자기 교회 안에서도 목회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차마 그 길을 가라고 권유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동성애를 인정하면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 목회자들에게 어떤 도전이 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이는 가짜뉴스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대의 자식들이 아니라 ‘한 책의 백성’이다. 시대정신은 늘 하나님의 원리와 어긋났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호모 네간스(homo negans)’의 입장을 고수해야 했다. 오늘날 시대정신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동성애 문제다.

이 첨예한 문제에 대한 입장차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예사로 ‘보수 기독교’가 반대 목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독교에는 보수나 진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 기독교’와 ‘비성경적 기독교’만 있을 뿐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비성경적 기독교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면 성경적 기독교다.

신구약 성경은 일관되게 동성애를 명백한 죄로 규정한다. 따라서 이 죄를 배격하는 것은 성경적 기독교인이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다. 혹시 이것이 ‘소수인권보호’이지 죄가 아니라고 하는 이들은 변신에 능한 죄의 변장술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변장된 죄의 정체를 알아보고 그것과 싸워야 한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 흘리기까지 사투하라고 촉구하신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거센 흐름을 차단해 역류시킬 수 있는 나라가 어쩌면 세상의 영적 제사장을 꿈꿔온 이 땅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성경적 기독교는 이 땅에 남아있는 ‘거룩한 그루터기’다.

일전에 나온 사랑의교회 담임목사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번 판결을 내린 이들은 결정안의 타당성을 강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같은 사안에 대한 앞선 두 번의 판결이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어서 내게는 결국 법적으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판결할 수 있다는 말로 다가온다.

이런 사안을 두고 왜 당사자와 수많은 성도들의 공동체를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지 의문이다. 따지자면 입학생들은 학교가 지도하는 대로 하는 것이어서 책임을 물으려면 해당 학교에 대해 물어야 하고 행여 학교의 지도대로 따라 한 학생이 피해를 받게 되면 ‘정의의 사자들’인 법관들은 도리어 그를 보호해주는 게 상식일 것이다.

게다가 이게 언제 일인가. 어지간한 범죄들도 대개 10년이면 시효가 끝나는데 이 건은 그런 시효가 지나도 한참 지난 것이었다. 사안의 성격도 무슨 범법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절차 문제였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판결하는 것은 편향성이 도를 넘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가혹함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법조인이 읊조리는 공평무사와 정의가 어디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나아가 이 건은 헌법 20조가 선언하고 있는 종교의 독립성을 결정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관들은 교단 스스로 자기들이 법을 정해 놓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개입한 것이라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소송을 건 자들에게 법을 만든 교단으로 가라고 해야 마땅하다. 실제로 그 과정이 과연 용인 가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편법이었는지의 해석 여부도 법을 만들고 집행해온 이들에게 주어져 있는 게 아닌가. 결국 이번 판결은 협의적으로는 교회의 고유 권한에 대한 세상 법정의 월권적 관여요, 광의적으로는 하나님나라 운동에 대한 세속의 노골적 침범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을 두고 당사자를 그 자리에 세운 교회와 노회는 물론, 산하교회를 지켜줘야 할 총회는 단호히 이의를 제기하고 수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이의제기는 교회의 고유권이 침범 당한 데 따른 정당한 조치다. 이를 넘어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사의 직분과 위치를 세상이 마음대로 무효화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성경적 원리에 따른 것이다.

결국 이 판결의 요지는 ‘교단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단의 주체인 노회와 총회가 ‘그를 교회의 위임목사로 세운 것은 교단이 한 것이므로 그의 위임목사 요건이 충족됨을 우리는 재확인한다’고 선포해 반드시 종교적 결정의 자율권을 고수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침례교 등 회중 교회 뿐 아니라 장로교도 그 교회 소속 성도들이 누구를 세우기로 결정하면 그것이 그대로 유효한 것이다. 거기에 외부인이 무슨 권한으로 이 사람은 안 되고 저 사람은 되고 하는 식으로 관여하고 판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만일 이번 판결이 묵인되면 앞으로 한국의 목사들과 교회들은 저들에게 운명을 맡기게 된다. 이번 문제에 봉착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이 단호히 대처해 언필칭 ‘장자 교단’으로서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다른 교단들도 남의 집에 불난 듯 침묵한다면 그 불은 머지않아 그들 산으로 번져갈 게 분명하다. 사법부의 일부 인사에 국한되겠지만 바라기는 그들도 이 점을 인식하고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준수해 종교의 고유 영역을 지키는 품격을 지니기를 촉구한다.

전광식 (전 고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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