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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장은수] 사랑의 미학

입력 2018-12-12 04:05:01


이슬람 모스크들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된다. 몇 해 전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 코르도바 대성당에서 황금색 또는 회청색으로 칠해진 아라베스크 문양을 보는 순간 나는 그 극단적 아름다움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제단 뒤편에 금빛으로 빛나는, 더없이 세밀하고 정교한 문양들이 눈을 사로잡고 발을 붙잡았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황홀한 기분이 찾아와 한참을 얼어붙어 있었다. 슬쩍 보니 옆에 선 아내도 마찬가지로 넋이 나가 있었다.

하지만 이 문양들이 극치에 이른 장인의 솜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덧없음을 드러내는 것임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이토록 아름다운 것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이렇게 화려한 것도 반드시 모래 속으로 스러진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 신을 감지하려 하지만, 신은 언제나 그 바깥쪽에 있다. 오직 신만이 영원하다. 이런 생각에 따라 이슬람 모스크에는 신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감각적인 것’ 바깥에 항상 존재하며, 물질적인 것으로는 신을 표현할 수 없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멈출 수도 없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부침 속에서 결국 소멸할 것이나, 신의 위대함을 세상에 알리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아름다움에 도전함으로써 그 너머에 신이 있음을 선포해야 한다. 아름답게, 아름답게, 더 아름답게…. 이것이 무진장 화려한 이슬람 미술의 비밀이다. 일종의 ‘절망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항상 이슬람 미술이 너무나 잔혹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태어나 고통을 겪다가 결국은 죽는다”는 세 동사의 허무에 사로잡힌 이들만이 이러한 극단적 미학을 추구한다. 사실, 인간의 정의는 어느 종교나 비슷하다. ‘반드시 죽다’가 인간의 정의다. ‘필멸’의 존재로 태어난 인간이 ‘불멸’의 꿈을 꾸는 오만에 빠져 온갖 무리를 다하다 제 몸과 영혼을 망치는 이야기가 우리의 인생담이다. 햄릿은 광대 요릭의 해골을 끌어안고 탄식한다.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던 그 야유, 그 익살, 그 노래, 그 신명 나는 여흥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는가? 턱이 아예 달아나다니? 자, 마마의 침실에 가서 전해라. 화장을 아무리 두껍게 한들 어차피 이 얼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나치게 허망하다. 인간이 온전히 견디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럽다.

‘신곡’에서 단테는 ‘절망의 미학’ 너머에서 ‘희망의 미학’을 발견한다. “인생길 반 고비에 길을 잃고 나 어두운 숲 속을 헤매었네”로 시작한 ‘신곡’은 “내 소망과 의지는 사랑에 의해 수레바퀴처럼 돌고 있었으니, 태양과 뭇별들을 움직이는 바로 그 사랑이었다”로 끝난다. 단테는 인류 본연의 ‘고통의 이야기’를 ‘사랑의 이야기’로 고쳐 쓸 수 있다는 것, 인생은 추악함에서 시작해 기쁨으로 끝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랑’을 통해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다’가 인간의 또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피렌체 여행에서 본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사랑의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바람처럼 가볍게 왼쪽에서 날아온 천사는 마리아한테 고개 숙이면서 말한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오른쪽에 앉아 책을 읽던 성모는 놀란 얼굴로 말씀을 전하는 천사에게 살짝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천사들의 전설’에서 미셸 세르는 이 인류사적 장면을 이렇게 풀이한다. “장면은 텍스트의 방향을 따르는데, 우리는 왼쪽부터 읽어가지. 우리의 의미 없는 낱말들만이 여기저기 흩날려. 낱말이 의미를 지닐 때 우리는 수태하고, (중략) 말씀은 육신이 돼.”

신은 진리의 언어를 항상 보내는데, 인간이 신의 뜻을 모르는 것이다. 이를 연민한 신은 인간의 몸에 스스로 현신하기로 하고 천사를 보내 이를 알린다. 마리아는 두려움 속에서도 신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의 육체로써 신을 품는다. 우리 몸이 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헛되지만은 않다. ‘수태고지’는 절망의 미학이 아니라 희망의 미학을 보여준다. 성탄절이 다가온다. 너무나 힘든 세상이다. 마리아가 보여주듯, 우리 모두가 진리를 품어 희망의 증거가 되었으면 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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