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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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싱어롱

입력 2018-12-12 00:05:01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룹 퀸의 음악과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싱어롱 관람 기회를. 영화 개봉 초반, ‘싱어롱(Sing along)’하러 갔다가 ‘싱어론(Sing alone)’하고 왔다며 민망해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싱어롱을 통해 퀸 음악의 진수를 맛봤다며 ‘한 번 더 가겠다’고 ‘너도 꼭 가보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싱어롱 관람 경험이 퀸을 몰랐던 한국의 10대, 20대에게 퀸을 새롭게 만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들렸다. 유례없는 한국의 싱어롱 열풍에 영화 제작사와 해외에서 더 놀라고 있다고 한다.

함께 노래한다는 의미의 ‘싱어롱’. 한국말로 제창, 요즘은 ‘떼창’으로 불리는 행위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유별나다.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가 금지곡이던 1970~80년대 떼창의 대다수는 민중가요였다.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옆에 선 누군가와 함께 어깨를 걸고 외침인지 노래인지 모를 투쟁가를 부르며 결의를 다졌다.

90년대 이후엔 국내외 아티스트의 콘서트 현장에서 수준급 떼창을 들을 수 있었다. 대표 히트곡이 아닌 노래들까지 따라 불러주는 한국 관객에게 감동받아 ‘어썸(awesome)’을 외쳤던 건, 세계적인 밴드 ‘마룬5’의 애덤 리바인만이 아니었다. 당신의 음악을 우리가 이만큼이나 좋아한다는 관객들의 마음이 떼창으로 울려퍼지는 순간 가수와 관객이 주고받는 교감은 때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시위 현장이나 콘서트장만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야구장에서도 싱어롱한다. 야구 자체보다 응원가 부르고 노는 재미에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해외의 관광객들도 이 때문에 야구장을 찾는다. ‘야구에 집중하지 무슨 응원이냐’는 사람도 있지만, 결정적 순간 승패를 가르는 한 방이 나왔을 때 해당 선수의 응원가를 함께 부르며 느끼는 짜릿함과 소속감은 단순한 환호성으로 대체할 수 없다.

사실 싱어롱은 그 누구보다 크리스천들에게 익숙하다. 교단이나 교회별로 예배 양식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예배 중 회중이 다 같이 찬송 드리는 순서가 한 번씩은 있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마다 성가대를 운영하고 예배 전 찬양시간을 갖는 경우도 많다. 예배당을 가득 메운 교회 지체들의 찬송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만 아니라 주님의 사랑 안에서 공동체가 하나 됐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종종 찬양이 형식적인 예배 순서로 여겨지면서 다함께 찬송하는 순간 누리는 감격을 당연시하거나 간과할 때가 적잖다.

무엇보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지 자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CS 루이스는 시편 19편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노래’라고 했다. 그는 찬양에 대해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점을 ‘시편사색’에서 들려준다. 그중 하나가 찬양은 기쁨이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일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가 높이 평가하는 대상을 찬양할 땐 자연스레 타인에게도 찬양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는 점이라고 적고 있다.

몇 해 전 성탄절을 앞두고 미국에 머문 적이 있다. 당시 듀크대 채플에서 여러 교회가 함께 이웃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준비했다고 해서 가봤다. 대단히 훌륭하다고 할 순 없지만 성의를 다한 연주,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리를 맞춰가며 정성껏 불러주던 중창, 공연 말미 귀에 익숙한 캐럴을 함께 불러달라는 요청에 청중들이 수줍게 싱어롱하며 처음 만난 옆자리 사람과 나눴던 인사와 미소. 그들은 이방인에게 작지만 행복한 시간을 선사했다.

2018년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기쁨으로 이웃에게 전하기 좋은 계절이다. 교회는 어떤 싱어롱을 준비하면 좋을까.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는 싱어롱을 넘어서 교회 밖 지역사회 이웃들과 싱어롱할 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 겪어보니 찬양을 이웃과 나누는데 꼭 많은 사람이, 노래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분을 찬양할 때 맛본 기쁨, 그 기쁨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픈 사랑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싱어롱!

김나래 종교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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