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세상만사-강주화] 연말을 보내는 법

입력 2018-12-14 04:05:01


지난 주말 지인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송년회였다. 자택에서 하는 연말 모임이 드물기 때문에 반가웠다. 크래커 한 상자와 와인 한 병을 들고 그 집 현관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다 모여도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대부분 지인과 함께 일을 하는 이들이었다. 소박한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누군가 지인에게 “어떻게 집으로 초대할 생각을 했냐. 번거롭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한 해 동안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수고가 있지만 즐거운 일”이라며 웃었다.

그 모임에서 돌아온 뒤 송년(送年)의 의미를 생각했다. 송년회에서 지난 1년간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가치 있다고 여긴 일은 무엇인지 떠올려 보게 된다. 한 해의 끝에 서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연습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죽음 앞에서 할 일은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것일 테니까.

얼마 전 새로 번역된 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연말에 어울리는 소설이다. 일본 작가 시바타 쇼가 쓴 이 작품은 1950년대 전후 학생운동 세대의 방황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나(후미오)’는 어느 날 헌책방에서 H전집을 산다. 약혼녀 세쓰코는 그 책에 찍힌 소유자의 장서인(藏書印)을 보고 대학 역사연구회 회원 사노의 책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노는 지하 군사조직에 투신할 정도로 극렬한 공산주의자였다. 세쓰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방을 쫓던 후미오는 사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숨지기 직전에 쓴 편지를 손에 넣는다. 투쟁 현장에서 동지들을 버리고 도망친 경험을 갖고 있던 사노는 어느 날 이런 자문을 한다.

“나는 죽음을 앞두고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사노는 ‘나는 배신자’라는 결론을 내릴 거라고 생각한다. 죽을 때 기억나는 것이 과거에 저지른 배신이라면 현재의 생활이 의미 없다는 마음이 들고 사는 것이 귀찮게 느껴진다. 그는 죽음을 선택한다. 허무가 청춘의 사노를 삼킨 것이다. 세쓰코는 사노의 편지를 읽은 뒤 같은 질문에 매달리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후미오 곁을 떠난다.

내가 죽는 순간, 하게 될 질문과 그 답은 무엇일까. 지난 10월 독일에서 작고한 시인 허수경은 눈 감기 직전에 쓴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한다, 라고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시간은 없었다고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라고 했다. 어쩌면 죽음을 예감한 그 시간, 사랑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최근 나온 은모든의 소설 ‘안락’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여든여덟의 할머니가 죽기 직전 가족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 인사를 나눈다. 할머니는 직접 담근 자두주로 온 가족과 건배한 뒤 “모두 수고 많았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할머니 입장에서 이 자리는 이생에 남은 피붙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다. 가족 입장에서 이 모임은 한 삶을 저편으로 보내는 송생회(送生會)다.

송년회는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흘려보내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평소 하는 송년회는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한 설문조사 업체가 성인 3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6명꼴(59.4%)이 송년회를 부담스러워한다. 가장 큰 이유로 불편한 분위기(17.0%)와 음주 강요(16.8%)를 꼽았다.

한 회사가 전 세계 7개국 7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57%가 집에서 하는 송년회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즐거운 송년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89%가 ‘뜻이 잘 맞는 동료’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이들과 편안한 장소에서 친밀함을 나누길 원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송년회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친밀함과 의미를 나누는 연말 모임을 꾸리면 좋겠다.

강주화 문화부 차장 rula@kmib.co.kr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