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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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라동철] 유연하되 길은 잃지 말아야

입력 2018-12-14 04:05:01


소득주도성장 정책 과속으로 양극화 심화시키는 역설 초래
2기 경제팀, 부작용 완화 위해 정책 보완·수정 시사한 건 바람직
경제 불평등·양극화 해소하려는 기본 방향은 포기해선 안 돼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다. 국민의 소득을 늘려 경제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기업의 혁신을 촉발해 경제 발전을 꾀하고, 공정한 시장거래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부작용은 부각되면서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가장 논란이 분분한 건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들은 이 정책이 실패로 판명 났으니 당장 폐기해야 한다며 포화를 퍼붓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대표적인 수단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법정 최저임금이 올해 7530원으로 지난해보다 16.4% 올랐고, 내년 1월부터 8350원으로 10.9% 추가 인상될 예정이다. 야권과 경영계에서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한 주범으로 소득주도성장, 특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지목하고 있다. 이는 위기의 원인을 너무 단편적으로 진단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위기에 빠진 원인은 복합적이다. 자동차·조선업종 등 기존 주력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데 새로운 성장 동력은 찾지 못하고 있는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떠받쳐온 주력 제조업의 위축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이는 내수 위축을 촉발하고 포화상태여서 경쟁이 치열한 자영업종의 위기로 이어졌다.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충격을 줘 고용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소득 양극화 심화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양극화를 완화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딴판이었다. 통계청의 지난 3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를 보면 소득 하위 20% 가구(1분위)의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7% 준 반면 상위 20% 가구(5분위)는 8.8% 늘었다. 5분위 가구의 소득이 1분위 가구의 몇 배인지를 보여주는 소득 5분위 배율은 5.52배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컸다. 경기 하락과 최저임금 상승 등의 영향으로 임시직과 비정규직 취업 비중이 높은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줄어든 게 영향을 미쳤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이 유지되는 사람은 소득이 늘지만 일자리를 잃는 사람은 근로소득이 ‘0원’이 된다. 영세 자영업자와 한계 중소기업의 지불여력을 고려하지 않고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인 결과다.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은 고용이 안정적이고 노조의 힘이 센 대기업과 공공부문 종사자들에게 돌아갔다.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며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이 양극화를 부추기는 역설을 낳은 것이다.

정부는 제2기 경제팀 출범을 계기로 기존 정책에 변화를 시사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일 취임 후 처음 주재한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이나 52시간 근로 등 시장의 기대와 달랐던 정책은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면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부작용이 큰 정책은 거둬들이거나 수정하는 게 당연하다. 정책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현장을 중심에 놓고 정책을 점검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전환하는 실사구시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런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정책을 더 정교하고 탄탄하게 가다듬어 기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현실에 맞게 수정·보완하는 걸 주저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정책의 방향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3만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2006년 2만 달러를 넘어선 후 12년 만에 선진국의 문턱으로 진입하는데 국민들이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경제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배분되지 않아서다.

양극화는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다. 소득 양극화와 중산층의 붕괴를 초래한 과거의 정책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경제 불평등을 완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정책이다. 정책의 정교함이 부족한 게 문제이지 정책 자체에 실패가 내재돼 있다고 볼 수는 없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도 “중산층을 키워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한국 정부의 기본 철학은 절대적으로 옳다”며 소득주도성장을 지지한 바 있다. 경제 주체들의 수용 능력을 감안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는 한편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혁신성장, 공정경제 정책에도 힘을 실어야 한다.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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