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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손영옥] AI 시대, 차라리 로봇 국회의원 어떤가

입력 2018-12-21 04:05:01


인공지능이 예술을 창작하고 진품인지도 판단하는 시대
단순 반복이나 어제와 똑같이 일하는 직업은 살아남지 못해
특권 많고 호통·구태 반복하는사람보다 AI의원이 더 나을 듯


얼마 전 현대자동차가 미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현대차 아트살롱’에 참석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예술: 자연성과 인공성’이란 주제가 솔깃했다. 강사 이력도 구미가 당겼다. 대통령 아들 문준용씨가 작가로 참여해 화제가 됐던 2018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그 총감독을 맡은 유원준 더 미디엄 대표가 강연자였다. 예술의 미래를 논하는 강연 내용은 꽤 흥미 있었다. 골자는 인공지능이 예술을 창작하고 예술작품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까지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거다. 전주곡은 울렸다.

영국의 원로 작가 해럴드 코헨이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아론(AARON)’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회화 작업을 한다.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전시를 했고 작품도 팔린다. 구글에 들어가 검색해보라. 야수주의와 추상표현주의를 합친 듯한 화폭은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어느 예술가의 독창적 세계를 보는 듯했을 거다. 실제 코헨이 창조한 아론은 독자적으로 예술 작업을 한다. 코헨이 준 조건값에 따라 예술행위를 하지만 어떤 결과값이 나올지 코헨도 예측을 못한다.

1917년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뒤샹은 남성 변기를 전시장에 작품이라며 내놓고는 ‘샘’이라 제목을 붙였다. 뒤샹의 샘이 미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1세기가 지난 지금, 코헨이 제작한 아론은 예술작품을 기계와 인간 중 누가 만든 거라고 봐야 하느냐는 위협적인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인공지능은 누군가의 그림이 예술인지 아닌지 판단도 한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인 ‘생성적 적대 신경망(CAN/GAN)’을 활용해 데이터값을 넣으면 미술인지 아닌지 심사할 수 있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예술가도 예술비평가도 함께 ‘골로 가는’ 처지가 됐다니 적잖이 위안이 된다. 인공지능 시대에 기자는 이미 일자리를 뺏기고 있는 직종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사의 ‘로봇 기자’는 AP통신 등에 회계 기사, 스포츠 기사를 ‘사람 기자’의 10배 이상 쏟아낸다.

미래에는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까. 불안한 상상을 하다 어떤 직업이 그래도 가장 오래 버틸까를 생각해봤다. 경제추격연구소가 낸 ‘2017 한국경제대전망’은 기업의 전략기획 같은 비반복적인 인지적 업무를 꼽았다. 또 미용사 같은 비반복적인 신체노동도 기술발전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했다. 매번 가위질이 달라 창조적 작업이라는 것이다.

기술혁신이 초래할 실업에 대한 공포는 크다. 분명한 건 단순 반복의 방식, 어제와 똑같은 방식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로봇으로 대체하는 게 경제논리상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단순 반복의 직종을 꼽자면 국회의원만한 직업이 또 있을까. 문득, 우리 국회의원처럼 일하면 ‘로봇 국회의원’의 생산성이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경력의 큐레이터인 지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하소연으로 일어난 연상작용 때문이다. 사립미술관의 열악한 재정을 호소하는 그녀는 자신의 세대는 ‘열정 페이’를 감수했지만 후배 세대는 그러지 않다며 속상해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의 셀프 연봉 인상 중단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함께 링크했다.

친구에게 로봇 국회의원 아이디어를 꺼냈더니 박장대소했다. “맞다. 하는 일이 뭐 있냐”며 “로봇은 친인척 보좌관 채용 비리는 없을 것 아니냐”고 한술 더 떴다. 이게 여론이다. 해마다 때 되면 정책적 쟁점 없이, 여야 구분 없이, 호통만 치는 국정감사가 되풀이된다. 지역구 챙기기 쪽지예산안 구태도 마찬가지다. 누구 하나 내면 너도나도 비슷한 법안을 내는 ‘베끼기 법안’과 대정부 질문에서는 지역 민원만 해대는 행태는 또 어떤가.

사정이 이러다 보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논의는 선거에서 ‘죽은 표’를 방지해 다양한 시민의 뜻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자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국회의원 증원 꼼수로만 해석돼 여론이 곱지 않다. 현행 300명인 숫자를 330명 혹은 360명으로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인구가 1000만명도 안 되는 스웨덴의 국회의원 수는 349명이나 된다. 숫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일을 하느냐의 문제다. 이 나라 의원은 특권도 없이 업무 강도는 아주 세다. 상시회기제를 채택해 여름 두 달만 제외하고는 국회가 10개월 열린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해야 하고 개인 보좌관도 없어 국감 때면 정치인 스스로 의회 도서관에서 파묻혀 살아야 한다. 그러니 이직률이 30%나 된다.

우리는 어떤가. 특권은 넘쳐나고 하는 일은 없다는 게 국민 인식이다. 도서관에서 자료 뒤진다는 의원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이 ‘죽음의 외주화’ 방지 법안에 손 놓고 있는 사이 또 청춘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 인공지능 국회의원에라도 희망을 걸고 싶다.

문화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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