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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칼럼] 병목 사회 증후군

입력 2018-12-25 04:05:02


2018년,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하게 저물고 있다
‘해도 안된다’는 자조 넘치고 기득권 벽 강고해져
병목 현상 방치하면 모든 분야 발전의 동력 꺼질 수 있어
정치적 리더십이 길에 나가 병목을 푸는 모범 보여야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이 창대한 해는 연말도 흥겹다. 아쉽게도 2018년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하게 저물고 있다. 비핵화도 경제도 민생도 정치도 연초의 희망은 연말의 실망으로 돌아왔다. 500포인트가 빠진 증시와 반 토막 난 대통령 지지율이 이를 씁쓸히 상징한다.

당장 어려울수록 긴 호흡으로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자부심과 용기를 얻는 지혜도 필요하다. 지난 70년 한국의 성취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세계사에서도 거의 없는 사례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중 국민소득 50달러 나라가 3만 달러 나라가 된 나라는 없다. 반도체에서 섬유까지 거의 모든 산업이 세계 10위 안에 드는 산업 강국이 된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독재를 뚫고 가장 활력 있는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것도 엄청난 성취다. 이런 발전을 이룬 요인들은 여럿이지만, 특히 ‘생각의 힘’, 그리고 ‘투지’와 ‘근성’을 강조하고 싶다.

좌승희 교수는 한국 경제 발전의 비밀을 ‘흥하는 이웃을 창의적으로 따라한 데 있다’고 설명한다. 대한민국을 만들어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신속히 이식하지 않았다면, 농지개혁을 통해 전통적 지주층을 해체하지 않았다면, 의무교육을 통해 문맹률을 80%에서 20%까지 끌어내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미국과의 동맹을 확고히 하지 않았다면 그 뒤의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도성장기에 기업 육성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정책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다면, 삼성반도체나 현대차, 포항제철은 없었을 것이다.

이 전 과정에서 미래를 향한 아이디어들이 넘쳐났고, 해볼 만하다고 여겨진 것은 거침없이 채택되고 실천되었다. 사회 전체에 넘쳐나는 투지와 근성이 그런 창의적 도전을 뒷받침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정, ‘잘 살아보세’로 집약된 강력한 동기, ‘닥치고 공격’하는 기업 투자와 신산업 진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자는 불굴의 요구 등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궜다. ‘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이 시대를 지배했다. 한국인의 발전 DNA가 ‘신바람’이라는 이론까지 나올 정도였다.

지금은 어떤가.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샘솟고, 그를 실현한 투지와 근성이 넘쳐나는가. 그렇게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히려 걱정과 근심만이 넘쳐난다. ‘하면 된다’는 기풍보다는 ‘해도 안 된다’는 풍조가 짙게 깔려 있다. 무엇 때문일까. 한마디로 심각한 ‘병목 사회’ 증후군 때문이다. 신호등이 고장 난 혼잡한 사거리에서 서로 안 비키겠다고 다투다가 아무도 못 가는 상황과 비슷하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세계적인 스타트 기업 영역 가운데 한국에서는 70%가 규제에 묶여 진척을 못 본다고 한다. 최근 공유경제의 핵심인 카풀을 둘러싼 갈등이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디지털 쇄국’이라 할 정도로 우리의 혁신 환경은 척박하다. 구미 창원 군산 광양에 이르기까지 산업단지에 빈 공장이 늘고 해외로 나가는 기업이 줄을 서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병목 사회는 역설적이지만 발전의 결과물이다. 모든 분야가 조직화되고 거기서 ‘자기 이익’이 공고화된다. 이런 이익들은 강고한 기득권의 벽을 만든다. 그 벽에 막혀 혁신의 시도들은 무릎을 꿇고 만다. 병목을 풀려면 누군가가 나서서 ‘잠깐 차 좀 빼라’고 설득하고 서로 양보하게 해서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에 주어진 사명이다.

그런데 정치마저 적대적 공생의 구조 속에 병목의 덫에 단단히 걸려 있다. 시급하고 중요한 입법은 방기된 채 서로 네 탓이라고 손가락질하기 바쁘다. 이런 정치로 병목은 결코 풀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 전체에 분노지수만 높이고 분열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두 손가락이 상대를 향하고 있을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금년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이는 방탄소년단과 박항서 감독이다. 이들은 남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는 투지와 근성을 보여주었다. 이들에게 병목은 없었다. 이들은 추격자(follower)가 아니라 선도자(first mover)였다. 우리 사회 전체를 짓누르는 병목의 답답함이 거꾸로 이를 뚫어버린 이들에 대한 환호로 표출된 것이리라. 금년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이 예상되는 내년, 병목 현상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모든 분야에서 ‘발전의 동력’이 꺼질 수 있다.

이를 풀 열쇠는 결국 정치적 리더십의 손에 있다. 차 안에 앉아 말로만 차를 비키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직접 길에 나가 행동으로 병목을 푸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쉬운 일 하라고 국민은 권력을 주지 않는다. 어려움을 뚫고 시작은 미미하더라도 끝은 창대한 2019년이 되길 기대한다.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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