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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조윤석] 크리스마스와 절반의 기적

입력 2018-12-26 04:05:01


눈이 안 와서 그런지, 거리에 캐럴이 사라져서 그런지 언제부턴가 크리스마스가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날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2000년 전 중동 변방의 가난한 청년 예수님이 온 세상에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듯이 오늘은 희망의 소식을 전할 수 있어 기쁘다.

세계 200여개국 대표들이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세부 이행 지침을 마련하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인류가 그렇게 살아야 잘 사는 줄 알고 낭떠러지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다가 맨 앞에서 달리던 인간들의 눈에 절벽 아래가 보이기 시작하니 어, 이러다 모두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멈추기 시작한 일에 비할 수 있겠다. 1988년 설립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한 지 딱 30년 만의 일이다. 특히 대표적 기후변화 회의론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하며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 혼란스러웠는데, 이번 회의에서 미국까지도 이행 지침을 채택하는 데 동의했다니 가히 기적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당사국회의는 탈퇴 선언 후 3년까지 공식 탈퇴를 할 수 없어 미국은 2020년 11월까지는 당사국 지위가 유지된다).

지난 16일 폴란드 카토비체에서는 200여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 24)가 열렸다. 2주간의 끝장토론 끝에 지난 주말 파리 기후변화협정의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온난화 억제를 위한 세부 이행 지침(rulebook)이 채택된 것이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회의라던, 지난 10월 인천 송도에서 마련한 IPCC 48차 보고서, 온난화로 인한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로 묶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제적으로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특별 보고서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쿠웨이트의 반대로 채택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절반의 기적일 뿐 실질적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지만, 절반이라도 어디냐 싶다. 기적이 절반밖에 없으니 이제 나머지는 노력에 달렸다. 그리고 이미 희망적인 변화들이 시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분들께 이런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

첫째, 기업은 기후변화의 주 원인인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 나 홀로 이동하기 위해 1톤이 넘는 자동차를 움직이지 말고 대중교통을 탄다든지 더울 때 에어컨 사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제부터 정말 집중해야 할 일은 개인이 가정에서 전기를 아껴 쓰는 수준이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카본메이저데이터베이스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1988년 이래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1%가 단지 100개의 화석연료 기업에서 배출되었다고 한다. 1.5도 이내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이러한 대기업과 정부, 소비자들이 사업의 전 과정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단계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정부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숲을 조성하고,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에 대한 투자와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위한 탄소세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탄소세는 징벌적 세금으로 고탄소 배출산업 위주의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는 반론이 많아 우리나라는 아직 도입하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 최대 석유업체인 엑손모빌조차 탄소세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엑손모빌은 한발 더 나아가 기후변화 대응 탄소세 도입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비영리단체 ACD(Americans for Carbon Dividends)에 향후 2년에 걸쳐 100만 달러(약 11억원)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지도자에게 투표하고,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나머지 절반의 기적도 현실이 되도록 하면 된다.

조윤석 십년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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