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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칼럼] ‘아직 살 만한 세상’ 10대 뉴스

입력 2018-12-28 04:05:01


낯선 아이의 첫 생리 챙겨준 부부, 쓰레기봉투 20여개를 뒤진 경찰, 소방서 배달음식에 붙어 온 메모, 무단횡단자 살린 ‘차로변경 의인’

국민일보가 1년간 전한 250가지 매력적인 이야기… 세상을 아직 살 만하게 해주는 이들의 사연이 2019년에도 계속 들려오기를


서울 노원구에서 중고 컴퓨터 장사를 하는 부부에게 전화로 주문이 들어왔다. 초등학교 6학년 딸한테 저렴한 컴퓨터를 사주고 싶다는 엄마였다. 조금 머뭇거리더니 “저는 일하느라 지방에 있어요. 딸은 서울에서 할머니와 둘이 살고요…”라고 했다. 남편이 컴퓨터를 설치해주러 찾아간 집은 몹시 허름했고 구부정한 할머니 옆에서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몇 군데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그 아이가 보였다. “학원 가니? 태워줄까?” 하자 좋아하며 조수석에 올랐다. 10분쯤 지났나. 아이가 갑자기 내려달라고 떼를 썼다. 막무가내여서 대로변에 세웠더니 근처 건물로 내달려갔다. 조수석 시트에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말하자 잠시 후 불룩한 가방을 들고 달려왔다. 가방에는 물티슈와 생리대, 속옷과 치마가 들어 있었다. 그 건물의 화장실에 들어간 아내는 한참 있다가 전화를 했다. “5분 뒤에 나갈게. 얼른 뛰어가서 꽃 한 다발 사와.” 낯선 화장실에서 첫 생리의 두려움과 당혹감에 얼마나 울었는지 아이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는 일부러 더 환하게 웃으며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꽃을 건넸다.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그날 저녁 그 엄마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한 엄마는 분명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지난 2월 국민일보는 [아직 살 만한 세상]이란 말머리와 함께 이 사연을 소개했다. 갈수록 사는 게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그래도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에 이 말머리를 붙인다. 올해 출고된 [아직 살 만한 세상]을 세어보니 250건쯤 됐다. 낯선 아이의 첫 생리를 챙겨준 부부처럼 소소한 일화들이지만 가볍지 않은 울림이 있다. 그중 10대 뉴스를 추려보려 한다. 이런 기사의 경중을 따지는 건 무의미해 순전히 개인적 인상을 기준으로 했다.

부산 당감동에서 혼자 사는 김모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고 있다. 종량제 봉투 사기도 버거워 쓰레기가 생기면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다른 집 쓰레기봉투의 빈 공간에 조금씩 넣곤 했다. 7월 17일 저녁에도 그 일과를 마치고 들어온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현금 500만원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쓰레기로 착각해 버린 거였다. 5년간 수급비를 아껴 모은 전 재산이었다. 파출소로 달려갔다. 울먹이는 그에게 순경 2명이 “같이 찾아보자”고 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날이다. 쓰레기봉투를 풀어헤칠 때마다 악취가 진동했고 장갑도 끼지 못한 손은 오물로 뒤덮였다. 동평로 일대의 쓰레기봉투 20여개를 헤집은 뒤 땀을 뚝뚝 흘리며 당감시장 입구의 봉투를 열었을 때 검은 봉지가 나왔다. 너무 소중해서 검은 비닐로 5겹, 다시 하얀 비닐로 3겹을 싸놓은 지폐 5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할머니의 희망은 안전하게 수거됐다.

경찰관과 소방관이 수난을 당하는 시대라지만 제복이 여전히 아름다운 건 이런 이들이 있어서다. 사람들도 그것을 안다. 8월 한 소방서에서 SNS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늘 부름을 받는 이들이 누군가를 부르는 건 음식을 배달시킬 때뿐인데, 사진은 배달된 음식의 포장용기를 찍은 거였다. 밥과 국을 덮었을 뚜껑 2개에 매직펜으로 ‘119는 사랑입니다’ ‘화이팅하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자 다른 소방서에서도 사진을 올렸다. 야식으로 주문한 치킨 포장지에는 ‘덕분에 저희가 안전하게 살아갑니다’란 글귀가 보였다.

고의 추돌로 생명을 구한 ‘투스카니 의인’과 차도로 미끄러진 유모차를 트럭으로 막아 세운 ‘유모차 의인’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차로변경 의인’이라 불러야겠다. 지난달 어둑한 밤에 편도 2차로를 달리고 있었다. 전방에 손수레 끄는 할머니가 무단횡단을 하는 게 보였다. 속도를 늦췄는데 뒤따라오던 차는 할머니를 보지 못한 게 분명했다. 추월하려고 옆 차로로 옮겨 가속을 시작했다. 그는 급히 차로를 변경해 그 차의 진로를 막아섰다. 두 차는 간신히 추돌을 모면한 채 멈췄고 할머니는 길을 건넜다. 다툼을 예상했는데 뒤 차 운전자의 행동은 의외였다. 상황을 파악했는지 옆으로 차를 붙이더니 고개 숙여 인사를 했고 엄지를 치켜들어 보여줬다.

지난해 [아직 살 만한 세상]에는 길에서 쓰러진 행인을 심폐소생술로 살리려다 실패한 의대생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런 내가 좋은 의사가 되겠느냐” 자책하던 그에게 많은 이들이 격려를 보냈다. 올해는 시외버스에서 피 흘리던 취객을 4시간 동안 돌본 여학생 사연이 전해졌는데 그는 간호학 전공서적을 들고 있었다. 자신이 택한 길의 엄중함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은 분명히 좋은 의사와 간호사가 될 것이다.

쓰다 보니 이 글은 무리한 시도였다. 이것을 넣고 저것을 빼며 10개를 추리기엔 250개 이야기가 저마다 소중한 매력을 가졌고, 추린다 한들 이 좁은 지면에 다 담을 재주가 내게는 없었다. 그저 아직 살 만한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란 말로 맺는 수밖에.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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