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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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조민영] 적폐청산에 잊혀진 검찰개혁

입력 2018-12-28 04:05:0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당시 발표한 정책공약집의 제1장 제목은 ‘부정부패 없는 대한민국’이었다. 1장의 1호 공약은 ‘적폐청산’이었다. ‘권력기관 개혁’은 바로 뒤를 이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정권인수위 역할을 대신하며 내놓은 100대 국정과제에서도 ‘국민이 주인인 정부’라는 첫 번째 국정목표 카테고리 아래에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 1순위로 놓였다. ‘국민의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역시 이 국정목표의 과제로 포함됐다. 권력기관 개혁의 첫 타깃은 뭐니 뭐니 해도 검찰이었다. 박근혜정부 시절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건을 필두로 검찰 권력의 문제를 선명하게 인지했던 새 정부에 검찰은 청산할 적폐를 가진, 개혁해야 할 대상이었다.

적폐청산은 1호 공약답게 정부 출범과 동시에 착수됐고 쉼 없이 진행됐다. 국가정보원을 선두로 곳곳에서 적폐청산 태스크포스를 가동했다. 조직마다 대대적인 물갈이와 조직개편, 개혁 과제가 실행됐다. 검찰도 움직였다. 박근혜정부 시절 좌천됐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중용은 인사 개혁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몇 차례 검사 인사에서 이른바 ‘우병우 라인’과 공안 검사들은 대거 밀려났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수사의 중립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주요 사건에서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수사심의위원회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검찰 권력의 중심으로 여겨져 왔던 특수수사를 줄인다는 방침도 내놨다. 검찰 스스로 수사를 견제받고 권력을 내려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전방위로 진행된 적폐청산 작업은 자연스레 다시 검찰 수사로 수렴됐다. 국정농단 사건을 파헤친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는 해를 넘겨 올해에도 계속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한 지 1년 만에 이명박 전 대통령도 검찰에 구속됐다. 국정원 등 권력기관 적폐에 이어 금융권과 강원랜드 같은 공공기관 채용비리 의혹 등 사회 전반의 불공정·부패도 수사 대상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퇴직 간부 불법 재취업 알선 관행,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 의혹까지 검찰의 칼끝이 닿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렵단 말이 들렸다. 지난 6월 착수한 사법농단 의혹 수사는 대법원이라는 성역도 무너뜨렸다. 전무후무한 사법부 수사는 전직 대법원장을 겨냥하며 내년 초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정권 초 개혁 대상 1호였던 검찰이 적폐청산의 도구로 쓰이면서 더 강하게 거듭난 셈이다. 대신 적극 추진할 것 같았던 검찰 개혁은 적폐청산의 거침없는 물결 속에 휩쓸려 간 듯 보이지 않는다. 검사장 수를 줄이고 ‘귀족 검사’를 없애는 인사 규정 마련 등 개혁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수사 관행의 변화는 체감되지 않는다.

검찰 개혁의 대표적 수단으로 내세웠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정부 합의안을 마련하는 성과를 내놓고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방안 등과 함께 국회에서 발목이 잡힌 채 해를 넘기게 됐다. 사법농단으로 법원 개혁이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검찰 개혁은 사법개혁의 한 꼭지 정도로 축소되거나 아예 잊힌 느낌마저 든다. 수사권 조정안 국회 통과가 검찰 개혁의 지상 목표는 아닐 것이다. 검찰이 가진 수사 권한을 경찰로 넘긴다고 수사를 받는 국민의 권익이 자동으로 높아질 리도 만무하다. 다만 권력기관의 권한을 견제하고 진짜 국민을 위해 거듭나도록 할 방안을 논의해볼 기회를 또 놓치는 건 아닌지 안타깝다.

사법부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검찰을 견제할 가장 합법적 수단인 사법부의 판단마저 힘을 잃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은 시대다. 사법개혁 방안은 국회에서 논의를 이어가야겠지만, 검찰 스스로 온당한 견제를 받는 걸 꺼리지 않고 권력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변화를 멈추지 않길 바란다. 적폐청산을 통해 힘을 되찾은 검찰은 언제든 다시 적폐로 몰락할 수 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적폐청산 작업의 끝은 청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 실행될 개혁이어야 한다.

조민영 사회부 차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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