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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수 칼럼] 더욱 기도가 필요한 새해

입력 2019-01-02 04:05:01


항상 희망찬 새해 기대하지만
지난해에도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아
우리 힘만으로 안 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인내심 갖고 견뎌내는 소극적 수용력 필요


흔히들 희망찬 새해라고 말하지만 나라 안팎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많다. 지난해에도 희망찬 새해라고 했지만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았다.

국민일보가 뽑은 지난해 10대 뉴스만 해도 좋은 일이라곤 남북 정상회담과 평창 동계올림픽, 그리고 방탄소년단 빌보드 차트 정상 등 세 가지뿐이다. 나머지 일곱 가지는 미투, 갑질, 사법농단, 실업, 집값 폭등, 폭염과 미세먼지,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등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한 일들이다.

나라 밖도 마찬가지다. 북·미 정상회담, 태국 동굴 소년들 구출 정도가 좋은 뉴스이고 나머지는 미·중 무역전쟁, 난민, 미국의 이란 핵 합의 탈퇴, 폭염과 산불, 언론인 카슈끄지 피살, 시진핑 장기집권,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 아베의 ‘전쟁 가능 국가’ 개헌 추진 등 안 좋은 일투성이다.

올해 가장 걱정되는 일은 북핵과 경제 문제다. 특히 북핵 문제는 우리 힘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확실하게 체제 안전을 보장받지 않으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북 제재 등 압박을 최대한 강화하면 핵을 포기할까. 그러면 좋겠지만 오히려 갈등이 고조되고 무력충돌이나 전쟁 위험성만 높아질 것이다. 전쟁 위기가 고조됐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이전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이미 충분히 목격한 일이다.

경제 문제도 그렇다. 양극화나 일자리 문제가 어디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인가.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으면 경제가 살아날까. 경제는 구조적이고 장기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일례로 규제개혁만 해도 그렇다. 마음대로 잘 안 된다. 각종 규제가 문재인정부 들어 새로 생겨난 것도 아니고 이명박·박근혜정부,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도 규제개혁을 하기가 지독하게 어려웠다. 국민 대부분이 찬성하는 사립유치원 개혁 하나 하려고 해도 국민의 0.008%밖에 안 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반대하니까 불발되지 않았나. 하물며 복잡한 북핵과 경제 문제는 더욱 긴 호흡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하하키기 호세이가 쓴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견디는 힘’이란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답을 내리지 않고 지켜보는 능력, 즉 소극적 수용력(negative capability)이 필요하다.” 이 책에 따르면 소극적 수용력은 현대 사회가 강조해 온, 빨리 답을 찾아내 상황을 종결짓는 적극적 수용력(positive capability)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인내심 있게 문제를 끌어안고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다. 저자는 전쟁이 시작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가다 보면 소극적 수용력이 결여된 정치인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전쟁에 돌입해 버린 한심한 지도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빨리 해답을 찾거나 차라리 어떤 식으로든 끝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소극적 수용력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는 우물쭈물하며 결정을 미루는 것과는 구별된다. 이보다는 관용과 관련이 있다. 관용이 부족한 지도자는 말투부터 단정적이고 거침이 없다. 독일 국민들을 열광시킨 히틀러가 대표적인데, 관용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논쟁을 벌이면 십중팔구 히틀러 같은 관용적이지 않은 사람이 우위를 점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역사는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세상만사를 보면 바로 해답을 찾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경우들이 많다. 이 책은 평화를 유지하려면 위정자는 물론이고 국민들도 소극적 수용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지금처럼 답을 빨리 찾아내는 능력을 가르치기보다 사안이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탐구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 요구된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멀고 먼 길이 남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북핵 동결이나 감축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요원하고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거나 더 안 좋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자리 문제도 문재인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호전이 안 될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일들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계속 끌어안고 부닥치고 몸부림치며 가는 수밖에. 그래서 이번 새해는 더욱 기도가 간절하다.

논설위원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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