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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에서] 어머니의 이름으로

입력 2019-01-05 04:05:01


어머니의 이미지는? 따뜻함, 포근함, 아늑함, 인자함이다.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이라는 동지의식까지. 아무리 못난 자식도 어머니에겐 당신보다 소중한 존재다. 경북 청도의 60대 어머니는 자신을 흉기로 찌른 아들에게 행여 경찰에 붙잡힐까봐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피 묻은 옷 갈아입고 가”라고 아들 걱정을 먼저 했다고 한다. 모성은 참으로 위대하고 숭고하다.

막심 고리키의 소설 ‘어머니’는 나약한 존재에서 사회 변혁의 선봉에 선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정뱅이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무시당하고 살던 어머니는 이런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나약한 존재였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이후 혁명을 꿈꾸는 아들 파벨을 통해 1890년대 제정 러시아 시대 하층민의 비참한 현실에 눈을 뜬다. 그리고 파벨이 처형되자 어머니는 아들의 총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어머니는 권력을 향해 외친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눈물은 마르지 않아. 네게도 어머니가 있으면 그런 것쯤은 알 거다.”

전태일이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분신한 건 22살 때였다. 채 피지 못한 꽃다운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 이소선의 심정은 파벨의 어머니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 이후 실재한 이소선과 허구의 인물, 파벨 어머니의 삶의 궤적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소선은 아들의 유지를 받들어 노동운동에 투신해 ‘노동자의 어머니’가 됐다. 그는 네 차례 투옥되는 고난에도 죽는 날까지 아들이 가고자 했던 길을 걸었다.

지난해 말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서울 구의역 사고 이후 위험의 외주화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거센 여론에도 꿈적 않던 국회가 2년이 지나서야 응답했다. 누구보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의 공이 컸다. 자식 잃은 슬픔을 삭힐 새도 없이 그는 광화문광장에서, 국회에서 ‘내가 김용균이다’고 쓰인 손팻말을 들었다. 제2의 김용균은 막아야 한다는 그의 울부짖음은 문재인 대통령을 나서게 했고, 마침내 국회를 움직였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처리되는 날 김미숙씨는 국회를 찾아 의원들에게 일일이 “고맙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 법이 진작 통과됐더라면 아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그는 원망하지 않았다. 외려 고맙다고 했다.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단다. 보통사람들 눈에는 사람이 죽어야 마지못해 움직이는 국회가 꼴도 보기 싫은데 말이다.

한 무리의 어머니들이 있다. ‘정치하는 엄마들’이다. 학부모들이 교육 관련 목소리를 내자는 목적으로 2017년 6월 출범한 보통 엄마들의 단체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회원 수는 500명에 불과했다. 국민 세금을 쌈짓돈으로 여기는 사립유치원 비리에 뿔난 어머니들이 가세하면서 지난해 12월 말 현재 일반회원 1600여명, 인터넷 카페 회원 3500여명을 거느린 대형 모임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당면 목표는 유치원 3법으로 불리는 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다. 유치원 3법 국회 통과를 결사 저지하려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이들의 청산대상 1호다. 엄마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내 아들·딸들이 교육다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권리, 그것 하나를 지키겠다는 거다. 그 권리를 침해받았는데도 정치권이 해결을 못하자 참다못한 보통 엄마들이 직접 정치하겠다고 나섰다. 한유총은 어머니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 어머니는 강하다. 모성은 두려움을 모른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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